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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9. 2020

마지막 유희


마지막 유희                                   


   갑갑하다. 벌써 손맛을 못 본 지도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언제쯤 활어를 토막 내는 즐거움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사람들은-엄밀히 여자들은- 웃기는 존재였다. 그들은 잘 못 한 것 하나 없이 나에게 죄를 사해달라며 빌었다. 죄송하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다시는 눈에 띄지 않을 테니 제발 살려만 달라고. 쫀쫀한 스타킹으로 목줄기의 경동맥을 서서히 조이면 그들은 눈발은 터질 듯이 핏발이 부풀어 올랐다. 스타킹을 조였다 풀었다하면 그들은 빌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서서히 지쳐갔다. 어떻게든 살고자 발버둥치던 활어들이 결국 스스로를 포기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난 그들의 생사를 맘대로 처분할 수 있는 절대자요, 무한한 권능을 가진 조물주였다. 평소 밑바닥 인생이라며 나 따위 하류인생을 손가락질하며 업신여겨왔던 그들은 녹진한 정액을 머금은 채 내 발밑에서 식어갔다.      

   언론은 희대의 살인마에 싸이코패스, 성도착자 등 다양한 닉네임을 나에게 붙여주었다. 나의 행각은 실제보다 부풀려져 기사화되었고 이는 세상을 둘러둘러 나의 귀에 흘러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난 알 수 없는 야릇한 쾌감에 중독되어갔다.      

   나의 행위가 자본주의에 속박된 가녀리고 불쌍한 중생들을 구원하리라. 그들은 경직된 사회의 틀을 벗어나 내 손에 의해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게 되리라.                               

   어김없이 밤 사냥을 떠난 날이었다. 어쩐지 일진이 사납다 했더니 그날따라 나의 제물이 될 어린 양은 보이지 않고 술에 취해 之자로 골목길을 어지럽히며 걸어가고 있는 한 대머리 중년 아저씨만 보였다. 맘만 먹으면 그 역시 자유롭게 해줄 수 있으나 난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저 뒷주머니에 위태위태하게 꽂혀있는 지갑만 가져가려는 심산이었다.      

   술에 잔뜩 취한 여느 아저씨라기엔 힘이 제법 셌다. 퍽치기한 뒤 골목을 돌아 따돌리려 했지만, 그가 휘두른 주먹에 한 차례 머리를 비껴 맞아 버렸다. 잠시 휘청이다가 정신을 차린 후 도망가려 했지만 그 자식이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놔, 놓으라고 이 산도깨비 같이 생겨먹은 우라질 놈아. 술 취했으면 이거 놓고 그냥 조용히 집에나 쳐들어가라고!!     

   그날은 참 안 풀리는 날이었나보다. 배불뚝이 만취자와 밀고 당기는 싸움하게 된 것도 황당한데 골목길을 순찰하던 순찰차까지 와버렸다. 젠장.     

   세상은 아직은 따뜻했다. 순진한 경찰은 생활고에 시달린 한 백수 청년의 어설픈 금전 갈취행각과 쌍방 폭행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그리고 선고된 4년의 징역살이. 내 행각은 3류 지역 신문의 단신 코너에서나 다루었다. 아놔, 내가 이춘재라고! 너희들이 그리 찾아 헤메던 싸이코패스에 연쇄살인마가 바로 나라고!!     

   4년이면 몇 명을 회로 뜰 수 있는데, 너무 억울하고 아쉬웠지만 최소한 감옥에서만큼은 내 발톱을 숨겨야 했다. 내가 세상에 다시 나가는 순간 난 다시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고 억압받는 여인들을 구제해낼 것이다.                               

   3년째 별사건이 일어나지 않자 언론은 심심해졌나보다. 신문은 비질란테(악인을 음지에서 처벌하는 익명의 사도)가 나타나 싸이코패스를 처단했다는 3류 소설이나 써댔다. 젊은 여자들은 나의 무서움을 잊은 채 밤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기 시작했고 성범죄율이 다시 증가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엔 내가 필요해. 조금만 참자. 1년만 더 참으면 된다.      

   달리 욕구를 풀 수 없는 교도소 안이었고, 나름 잘 참아왔다고 생각했는데 3년 차에 이르자 금단현상이 꽤 심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맛이 떨어진 것은 당연, 작업 시간도 운동시간에도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가만히 혼자 있을 때면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작업 시간에 공구를 손에 쥐면 당장이라도 옆 죄수 모가지라도 따고 싶은 충동이 스파크처럼 온몸을 충격하듯 휘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가 막힌 희생자를 발견했다. 같은 방을 쓰는 죄수였다. 녀석은 늘 혼자였다. 여기서 죽어 나가도 슬퍼할 사람 하나 없는 천애 고아였다. 다른 죄수들과도 딱히 대화도 잘 나누지 않는 외톨이였기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위장하기 안성맞춤인 녀석이었다.      

   아무도 슬퍼해 줄, 의구심을 가져줄 사람 없는 그 녀석의 죽음을 교도관들은 담담하게 맞이하겠지. 그들은 ‘자살’이 맞다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확인 절차를 거친 후 매뉴얼대로 시신을 처분할 것이다. 그러고나면 그 녀석은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것이었다. 녀석은 비루한 삶을 구원받게 되고 나 이춘재는 욕구를 풀 수 있는 것이다. 이야말로 일석이조요, 일타이피였다. 늘 그렇듯 난 명분있는 내 행동에 자부심을 느낀다.     

   칫솔 대가리를 떼어내고 작업 시간 틈틈이 한 쪽 끝을 날카롭게 갈았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거사는 새벽 시간 순찰조가 교대할 때 치를 계획이다.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장소는 방 한편에 위치한 변소로 잡았다. 녀석을 변소로 유인한 후 칫솔을 녀석의 경동맥에 한순간에 꽂아버릴 것이다. 칫솔의 지문을 잘 닦아 녀석의 손에 쥐어주고 내 자리로 돌아가 깊게 잠든 척을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오늘 밤이다.                                                  







   “아놔, 이춘재. 이 새끼. 하필 뒤져도 왜 변소에서 뒤지냐. 들어 나르기 힘들게. 1년만 기다리면 출소할 모범수 새끼가 왜 갑자기 자살을….”     

   목에 피를 뿜어낸 채 변소에 고꾸라진 사체를 수습하는 교도관의 탄식이 감방을 울린다. 창살 저 너머로 먼동이 터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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