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문화적 관습을 깬 마스크 착용
2월 말 한국에 코비드19가 퍼졌을 때부터 마스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뉴욕 플러싱 중국인 커뮤니티 주민들은 이미 마스크를 착용하며 거리를 오갔다. 한국인과 일본인도 마스크 착용에 나섰다. 아마존과 아시안이 운영하는 약국에선 이미 일회용 및 N95 마스크 품귀 현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동네를 벗어나면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전까지 나는 마스크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이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 중국인이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지하철에서 폭행을 당하기 전까진 말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마스크는 아픈 사람이 남에게 세균을 전파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시선에선, 마스크는 불편한 데다 착용한 모습도 보기 좋진 않다. 게다가 마스크는 얼굴을 가려야 하는 범죄자를 연상시키곤 한다. 아프지 않은데 굳이 그런 마스크를 쓸 이유가 없다. 심지어 보호 면에 있어서 마스크는 미세한 바이러스를 막아주지 않는다는 학술적 결과가 우세다. 그런데 대체 왜 마스크를 써야 하나?
동양의 마스크 착용이 서양으로 넘어오며 문화 충돌을 일으켰다. 지하철에 마스크를 쓰는 아시안들이 등장하자 다른 사람들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특히 마스크로 느껴지는 위기감과 불안감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프다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게 미국인의 일반적 논리였다. (네, 아프면 쉬어야죠...그게 당연합니다만...)
이 불편한 시선이 사방에서 튀어나오자 2월 말에 마스크 문화를 아시안의 문화로 이해하려는 여러 글들이 등장했다. 그러니까 아시안의 마스크가 미국인들에게는 '과학'이나 '논리'의 관점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처럼 비춰진 것이다.
***2월말 코비드19 발병 초창기 마스크 착용을 이해하려는 기사 둘
https://qz.com/299003/a-quick-history-of-why-asians-wear-surgical-masks-in-public/
https://gothamist.com/news/ask-a-native-new-yorker-why-do-some-people-wear-masks-on-the-subway
코비드19 초창기에 나는 아시안 커뮤니티를 매일 오갔고 아무래도 발병 확률이 높다는 생각에 나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어느날 지하철을 타고 할렘에 갈 일이 생겼고 마스크를 쓰고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시아에선 사람들이 마스크를 열심히 착용 중이었고 이미 마스크 쓴 사람들의 이미지도 미디어를 통해 많이 노출이 된 상태였다. '내가 나를 보호하겠다는데 누가 손가락질을 할까?'란 마음으로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갈아 탔다. 승객 밀도가 높은 지하철에선 예상대로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엔 백인 소녀 한명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아마도 감기 기운이 있는 듯했다. 지인들은 시내에서 마스크를 쓰면 인종차별 범죄를 당할 위험이 있다며 내 행동이 무모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차별적 행동과 미국인의 관습을 따르기가 싫었다. 걱정 많은 아시안으로서 마스크를 쓰는 게 뭐 어때서? 걱정에서 우러나온 비과학적 행동이라 할지라도 뭐 어때서? 내가 왜 꼭 마스크에 관한 미국의 금기를 따라야만 하는데? 적어도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신경쓰고 있다는 표현은 되잖아? 당시 나는 이걸 아시안의 마스크 '스웩'이라 부르고 싶었다. '이봐, 아시안은 이 시점에서 마스크를 쓴다고. 나는 나의 룰대로 하겠다!' 뭐 이런 유치한 스웩이었다. 개인 차원에선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까웠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지하철 승객들은 내 마스크에 관심이 없었다.(다른 때 자리를 양보해주는 이들은 있었다. 대개는 나에게서 거리를 두려고 했다.)
초기에 CDC는 마스크를 권장하지 않았다. 마스크의 보호 기능에 관한 한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괜히 마스크 부족 사태가 벌어져 정작 필요한 의료인들이 사용하지 못할 수 있으니 마스크 사재기를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4월 초, 그 권고가 뒤집어졌다. CDC는 범국민적 마스크 착용을 재고하겠다고 발표했고 연방/주정부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장했다. 논란이 벌어졌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문화적 거부 사태부터 시작해서, 이전 마스크 비권장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한 것이냐는 성난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더군다나 일회용 마스크나 N95 마스크 모두 미국에선 동난지 오래였다. 일반인들은 사고 싶어도 쉽게 주문할 수가 없었다. 살 수도 없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니 시민들의 분노가 잇다른 건 당연하다. 그 수요를 감안한 뉴욕타임즈나 워싱턴 포스트같은 대중 신문은 집에서 마스크 만드는 법을 일제히 소개했다. 과학적 근거에 대한 의문도 꼬리를 물었다. 마스크에 대한 논쟁 기사가 매일 쏟아졌다. 결국은 100퍼센트 보호는 되지 않지만 바이러스를 옮기는 침을 막을 수 있고 적어도 착용을 안 한 것보다 낫다는 전문가들의 마스크 선호 의견들이 속속 등장했다. 무엇보다 마스크 착용은 지금 미국으로선 꽤 실용적인 조치다. 감염자들이 손을 댈 수 없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미증상이나 경미한 감염자들을 찾는 대신 그들의 입에 마스크를 채우는 방법을 생각해낸 셈이다. 모두 테스트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잠재적 감염자일 수 있으므로,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방법으로 마스크가 최선책으로 떠오른 것이다.
***4월초 뉴욕타임즈의 마스크 DIY 기사
https://www.nytimes.com/article/how-to-make-face-mask-coronavirus.html?searchResultPosition=3
한 달 전만 해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소수였는데 이젠 뉴욕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일회용 마스크, N95 마스크, 면 마스크, 스카프, 요상한 DIY 마스크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자신을 챙기는 동시에 바이러스 전파를 막으려는 시민들의 절박한 의지가 마스크로 느껴진다. 이 사태를 멈출 수 있다면 마스크든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심정인 듯하다.
한 달 전 한국 뉴스에서 마스크를 쓴 한국의 시민들을 볼 때마다 마스크 착용은 보호를 넘어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의 반영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의 눈치 때문에 억지로 쓴다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그 타인에 대한 강박적인 (그래서 너무도 한국적인!) 감각이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잠재력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인들은 사스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코비드19은 다르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병원으로 실려가고 내가 감염될 가능성도 굉장히 높다. 무엇보다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가 무너지고 있음을 두 눈으로 매일 확인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마스크는, 홍콩인의 사스 대처나 한국인의 미세먼지와의 싸움과 같이 '보호'와 '연대(salidarity)'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 모두 함께 공동의 위협에 맞서고 있다는 문화적 상징의 차원이 된다. 이 시간이 지나면 코비드19 판데믹은 미국인이 (잘 모르지만 아마도 대다수 서양인들 또한) 마스크를 집단적으로 착용하게 만든 시기로 기억될 듯하다. 작금의 문제가 있다면, 미국에서 마스크 수급란이 좀처럼 해결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쨋거나 이게 전 세계인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려고 한다. 마치 상상만 하던 디스토피아의 이미지가 현실이 된 듯하지만,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인류가 세계적 동질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건 참 신기하고 요상한 경험이다.
***뉴욕타임즈의 마스크와 시대 정서에 대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