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일 날
45세 생일 주간에 벌어지는 일은 이렇다. 건강이 안 좋던 엄마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지인 부모님의 부고 문자를 받는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요리를 하다가 뜨거운 오븐에 손을 대고 얼음물로 화상 부위를 식히며 한숨을 쉰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인생의 큰 파도가 갑작스럽게 나의 인식의 해안가에 도착하고 40대 중반이 되도 여전히 삶에 미숙한 내 모습에 놀란다. 한편, 페이스북 친구들의 축하 인사도 뜸해지고 가장 친한 친구조차 축하의 카독 보내기를 까먹은 듯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족 돌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친구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사람의 경조사를 챙길 여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나이다. 암 진단의 충격 와중에도 '괜찮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엄마는 '생일에 안 좋은 소식을 전해 미안하다'는 안타까운 문자를 보내온다. 그 와중에 위로와 축하를 동시에 해야 하는 남편은 나를 위해 특별한 미역국을 준비하고 예쁜 생일 카드를 건넨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의 인사. 이 정도면 아주 행복해. 엄마의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다음주말부터는 이 정도의 여유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45세 생일은 내 인생의 마지막으로 평온한 생일 날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대한 평범한 날을 보내기로 노력한다. 느지막히 일어나 생일 케잌의 촛불을 끄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뒷뜰의 잡초를 뽑고, 모처럼 글을 쓴다.
당연했던 것들이 점점 당연하지 않은 나이가 된다. 매년 좋은 날을 기원하던 엄마의 축하 인사도, 12시가 넘어가기 무섭게 쏟아지던 기원의 말들도, 멋진 선물과 고급스런 저녁도 점점 과거의 것이 되고 있다. 아쉽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연민이 생기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신기함에 가까운 감정이다. 절박하게 원하는 물건은 없고, 팬데믹 시기에 식당 예약은 조심스럽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제 45세. 앞으로 두 배의 시간을 더 살게 될까? 아니면 급작스럽게 삶이 끝나버리게 될까? 내가 좋아하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즐거웠던 기억들은 또 앞으로 계속 내 머릿 속에 남아 있을까?
엄마를 생각하다보니 오래 묵은 기억들이 산발적으로 문득문득 떠오른다. 미워했던 마음은 누그러지고 엄마가 얼마나 살기 위해 열심히 견뎌왔는지, 그런 부분들만 생각이 난다. 대체로 가난한 와중에 기뻤던 특별한 순간들. 우리가 좀더 사랑할 여유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좀더 서로를 믿고 기댈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각박한 여정은 상처를 더 많이 안겼지만 놀랍게도 좋은 기억들, 사소했던 일상의 기억들이 좀더 반짝이며 상처를 가린다. 이 시기에 슬프게도 부모상을 겪고 있는 선배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구나'라고 문자를 보내오고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 나는 밀려오는 새로운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슬픔이 상처가 되지 않도록. 감당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슬프지 않도록. 나와 시간을 공유하는 분들이 당장은 웃을 수 있도록.
위트를 덧댄 글을 쓰고 싶은데 아직은 가능하지 않네. 좀더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