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쓸 것인가
일주일간 코비드를 앓았다. 2020년에 걸렸던 오리지널 찐코비드에 비하면 별 것 아니게 느껴졌으나, 혹시 갑자기 냄새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연신 킁킁대며 다녔다. 끝까지 두통이 지속되었고 무엇을 떠올릴 때마다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느껴지는 '브레인 포그 brain fog' 현상이 심해졌다. 특정 길이름을 못 떠올리고 있고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훨씬 덜 아팠다. 이로서 팬데믹 시작과 끝 시기의 코비드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 되었다. (자랑할 일이냐고 이게)
생산력에 대해 늘 고민하며 틈틈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 모처럼 병가 기간 동안 텅 빈 시간이 주어져서 밀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쓸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앓는 내내 브레인 포그 현상에 생각하려 할수록 머리가 아파와서 글을 쓸 의지가 사라졌다.
중년의 느낌에 대해서도 한 자락 써야 하고
집을 사고 나서 가드닝에 눈을 뜬 경험도 써야 하고
'놉' 리뷰도 써야 하고
미디어 뉴스 레터 소재도 생각해야 하고
월간 리포트 준비도 해야 하고
뭐든 이전에 품고만 있던 생각들을 풀어놓아야지 했는데
정말 무엇을 써야하나 혼란이 생겼다.
그래서 손이 안 움직이면 머리라도 움직여야 하기에 (몸을 움직일 생각은 왜 안 하는가)
'부스터코스'에 들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해 동영상 강의를 듣고
이전에 사놨던 다른 동영상 강의도 듣고
'코세라'에서도 흥미로운 강의를 찾아보고
약간의 독서도 했다.
그런데 정말 쓰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병가의 마지막 날이다. 좀 나아지면 하려던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혼란스러운 느낌이라도 쓰려고 브런치를 열었다.
브런치를 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쓰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닐까?'
문서창만 열면 하릴없이 문장을 쓰고 기승전결을 쉽게 구성해내던 사람이 페이스북 메시지 남기는 것조차 약간 힘겹게 해냈다.
코비드가 생각을 게으르게 만드는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 초창기에 제대로 걸렸을 때는 잠시만 머리를 써도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회복이 되긴 했지만 이 바이러스의 이런 게으름(?) 유발 특징은 여진하다.
코비드 탓을 해보지만 이 기회에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정말 쓰고 싶은 게 있는지 살짝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쓸 것이 없다면 이후 삶의 목적은 무엇으로 정해야 할까, 이런 심각한 고민도 함께.
어서 회복이 되어 다시 글쓰기 근육이 돌아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