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달리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중독이 필요하다.'
이 문장을 듣는다면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중독? 중독된다면 안 좋은 것 아닌가?
중독 (中毒) 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2.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3.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사전적 의미도 그렇지만, 흔히 중독이라 하면 부정적 의미를 준다. 쉽게 보는 것이 음식, 탄수화물 중독이 그것이다. 당장은 탄수화물이 몸에 들어가는 순간 행복함이 있지만 결국 그것은 체지방이 쌓이고 서서히 몸을 망가트리는 것이다. 이처럼 중독이란 것은 몸에 안 좋거나 해로운 무언가에 빠져서 기존에 해야 할 것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자칫 중독이 심하면 타인이나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을 지속하는데 긍정적 중독 한 가지는 필요하다.
무언가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함이다. 우리네가 살아가는 지금은 혼자만의 힘, 단지 그것만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무언가 힘을 건네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긍정적 중독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함이다.
김세희 정신과 선생님이 쓴 '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책에서 저자는 제일 좋은 것은 그냥 달리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그냥 달리는 자체를 삶을 지속하는 데 긍정적 중독 한 가지라고 말한다.
[ '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책 소개에서 인용... ]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남들보다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루에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듣고 상담하려면, 정신과 의사 역시 자신의 내면을 돌보고 살펴야 한다. 20여 년 가까이 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의사로서의 내면을 성찰하는 데 큰 힘이 되었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경청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새벽마다 달리며 힘들고 지친 이들의 정신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있다.
저자는 달리기를 동적 명상 혹은 기도하는 상태와 같다고 말한다. 달리는 동안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내면의 통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달리기 하나로 갑자기 인생의 바뀌진 않지만 마음의 근력이 없을 때는 체력이 살아갈 힘이 된다. 삶의 방향성을 잃어 헤매고 있다면 일단 나가서 달려보자. 달리는 동안 느끼는 몰입의 즐거움이 경직되어 있던 마음과 일상에 쉼표가 되어 준다. 출발선에서 두려웠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끝까지 달리다 보면 결승선에 마중 나와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달리기가 끝난 후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인생을 다시 살 순 없지만 마라톤은 나의 의지로 다시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출발선에서 시작도 안 해보고, 결승선까지 달려보지도 않고 레이스를 끝낼 것인가?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레이스를 이끌어가다 보면 머지않아 삶의 출구도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어느 순간 책의 저자, 김세희 작가,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처럼 달리기라는 긍정적 중독에 빠지게 되었다. 아마도 내 스스로 찾아낸 나를 위한 중독이다. 우연한 계기로, 일반적으로 그렇듯히 운동과 다이어트 목적으로 시작하였다. 처음 시작은 처참하였다. 단 10분도 못 뛰고 헉걱거리는 내 몸을 보고 스스로 좌절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좌절과 몇 가지 고개를 넘어 다행히 지금은 나에게도 긍정적 중독의 한자리를 자리 잡았다.
나에게 달리기는 나를 살리고 곧 내가 보는 환자도 살리는 원동력과 힘이 되어준다. 어느 순간에 체력적인 부담과 저혈당 증상이 온 것 같이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태가 있다. 한 달이면 족히 서너 번 그런 상황에 닥친다. 다행히 달리기 마일리지를 충분히 쌓아놓고 나의 몸 상태가 달리기로 인해 마음과 몸 근육이 회복된 상태라면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내가 그런 상황을 이겨낸다는 것은 곧 환자가 살아나고 위험한 고비가 없다는 말이다.
이번 주도 여러 번 달렸다. 짧게 그리고 가끔 장거리 두어 시간도 달렸다. 신발 문제인지 발가락에 물집도 생겼지만 오랜만에 장거리를 뛰니,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곧 올해 러닝의 결실을 맺는 대회가 다가온다. 작년에 뛴 코스를 다시 뛴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하지만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다. 절대 설레는 마음만으로 완주를 하는 것이 아니다. 더더욱 풀코스는 완벽한 준비를 해야 완주가 가능하다.
작년 쓴 글을 다시 꺼내본다.
내가 쓴 글, 메달 사진만 봐도 다시 설레고 가슴이 뛴다.
https://brunch.co.kr/@mdearnest/99
풀코스 마라톤은 마친 그 느낌,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이다.
'할 수 있는데 안 해봤잖아!'
그래서 해봤는데 되잖아!
해봤는데 되잖아.
그렇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하나 사라졌다.
두려움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면 된다.
이제는 하면 되는 것이다.
'끝까지 걷지 않고 뛰었다.' 이 말은 이번 레이스에는 못하였다.
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골인 지점에 도착하였다.
그렇다.
그렇게 나는 오늘 나 자신이 한 번 더 성장하였다.
2024년 11월 03일.
그날 밤, 경첩의사는 이 완주 메달을 꼭 품에 쥔 채 잠들었다.
너무 기쁘고 나 자신이 대단하였다.
가슴만 뛰지 말고 미리 몸, 다리 근육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한 달 반의 시간은 긍정적 중독을 두세배, 열 배로 만드는 시간이다. 얼마든지 그 긍정을 엄청나게 크게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꼭 해야 한다. 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 삶을 지속하기 위한 긍정적 중독은 또 무엇인가?
이왕이면 그 중독이 한 가지가 아닌 두세 가지면 더 인생이 재미있고 활기차게 될 것이다. 더 찾아보고 싶다. 나를 위한 긍정적 중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