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한테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1.
아주 오래전 손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펜으로 꾹꾹 눌러써서 애틋한 마음을 전하였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이십 년 전에는 애틋하고 하트가 담긴 손 편지를 꾹꾹 눌러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때는 전혀 글씨 쓰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데, 요즘은 펜을 들고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손가락 하나로 어떤 문자든지 바로바로 전달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이제 손편지와 떨어진지는 오래되었다. 펜보다 키보드가 더 익숙하고 편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실제는 키보드보다 손가락과 스마트폰에 적응된 시대로 살고 있다.
그러나 손 편지에는 키보드에 담지 못하는 애틋함과 진심이 담겨 있다.
"우리 아빠한테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
면담실에 나, 그리고 환자의 아내와 딸이 있다.
엄숙하고 차가운 분위기다. 당연히 환자 상태가 불안정하기에 좋은 말이 오갈 수는 없다. 나도 이빨을 지그시 깨물고 처음에 아무 말 없이 앞에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10여 초 침묵이 흐르고 내가 말하기 시작한다.
어제 늦은 밤에 입원을 하였고 만 하루가 지난 시점이다. 면담 말미에 나는 최상의 시나리오, 치료 과정이라는 가정하게 말을 한다. 이곳 중환자실에서 최소 2~3주 있어야 하며, 그 사이 여러 가지 합병증들이 없는 가정하에 앞으로 이삼 일이 고비가 될 것입니다. 최소 한 달 이상의 입원 기간이 예상이 됩니다. 물론 최악의 상황들도 반드시 이야기한다. 특히 중증외상환자들은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기에 사전에 충분한 가정과 설명을 해야 한다. 환자 가슴과 배가 다 으스러졌기에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미리 충분히 말해야 한다.
최악과 최선의 결과, 치료 과정을 설명하는 내 마음도 그리 썩 좋지가 않다. 무조건 좋은 것만 말하고 웃으며 보호자를 만나고 환자를 치료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환자 몸에 타인의 혈액이 2,000 cc 이상 들어간 환자에게 속단의 말을 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환자 몸에는 이미 입, 코, 가슴, 그리고 굵은 혈관 등등 십여 개의 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 관들을 통해 환자는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환자의 아내가 슬그머니 무언가를 건넨다. 손편지와 함께 커피 쿠폰이 들어있다. 일 때문에 병원에 오지 못하는 아들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절대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시 건네주었다. 받지 않겠다는 이유는 김영란법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실제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의 초기에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은 내심 마음에 걸리고 부담스럽고 이상하다. 그것을 건넨 것은 커피 쿠폰이 아닌 바로 환자 아들의 진심을 전한 것이다. 환자의 아내는 꼭 받아달라고 아들이 꾹꾹 눌러쓴 글씨를 보여주었다.
"우리 아빠한테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손 편지를 보는 순간 나는 약 5초간 멈추었다.
29개을 글자를 보고 또 보았다. 계속 쳐다보니 중환자실에 있는 아빠를 걱정하는 눈물을 훔치며 쓴 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쓰면서 아빠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그러할 것이다.
보호자와 타협을 하였다.
커피 쿠폰은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간절한 아들의 마음을 내가 알기에 손 편지를 내가 사진 찍어 간직하기로 하였다. 진심된 아들 마음을 담은 손 편지를 내 핸드폰으로 찍었다.
오래전에도,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내 가족이라면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치료할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mdearnest/223261439905
"지금 수술 결정을 하고 수술을 해야 합니다.
CT 검사, 제가 진찰한 소견 등 모든 것이 100% 장천공을 확신하는 소견은 아닙니다. 의학에 100%라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응급상황에서는 100%를 찾아가다가 자칫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잠시 생각한 후
"제 가족이라면 지금 이 순간 바로 수술 결정을 하고 수술받겠습니다"
이 마지막 말에 보호자는 더 이상 질문, 의문 없이 수술 동의서에 싸인하였다.
3.
"우리 아빠한테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환자의 아들을 보지 못하였다. 아들은 아빠의 주치의, 내가 최선을 다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마 엄마와 여동생을 통해서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나는 그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환자뿐 아니라 내 앞의 모든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 내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일하지 않는다. 내가 맡은 일이고 내 앞의 환자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때로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과는 담대히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하는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 환자가 퇴원하기까지 환자 아들이 쓴 손 편지를 여러 번 꺼내 보았다. 환자 상태가 불안정하거나 고비를 맞이한 순간마다 손 편지를 보았다. 아마 29 글자에 다 적어내지 못하였지만, 중환자실에 있는 중증외상환자 아빠를 꼭 살려다라는 의미도 함께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누군가의 아빠, 남편을 환자로 보고 있다. 오로지 담당 주치의인 나와 이곳 의료진, 병원을 믿고 따라온다. 간절한 마음을 손 편지에 담았다.
환자는 달력이 두 장 넘겨 건강하게 회복하여 집으로 갔다.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우리 아빠를 잘 부탁한다는 아들은 끝내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웃으며 아들을 만나는 환자를 상상해 보았다.
퇴원하기 이틀 전, 환자가 치료받았던 중환자실과 병동에 수십 잔의 커피가 줄줄이 배달되었다고 한다. 그날 면담실에서 커피 쿠폰을 받는 대신 사진을 찍으며 내가 말했다.
"환자가 잘 회복하고 좋아지면, 이곳 중환자실에 커피를 왕창 쏘세요!"
보호자는 정확히 내 말을 지켰다.
감사합니다.
보호자들도 제가 말한 중환자실과 병동 간호사들을 위해 커피를 왕창 쏘라는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가 그렇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누군가의 가족이 분명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가족이 아님에도 나는 이 순간 이 사람, 환자를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