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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Oct 10. 2023

목숨 붙들고 있는 사람들.



계속 쓰고,  두드리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교실·급류·공장…청년의 죽음, 의료진만 목숨 붙드는 게 아니다




수년 전 공장에서 참혹한 사고로 이곳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 중 사망한 네팔 청년의 마지막은 너무 비참했다.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병원의 모든 사람이 달라붙어 수술한 뒤 중환자실에서 치료했지만 다음 날 아침 운명했다.

“빨리 사망진단서나 주세요.”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찾아와 내뱉은 첫마디다. 고인에 대한 애도는 전혀 없었다. 사고의 원인이 회사에 있을 거라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지만, 재빠르게 사망진단서를 가져간 회사 관계자에게 사고는 묻혀버렸고 네팔에 있는 청년 가족들 마음속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대못이 박혔다. 그 회사는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무겁고 날카로운 기계를 다시 돌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죽음을 보는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의사다. 죽음이라는 글자를 어떻게든 지워버리고 생명의 끈을 이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음주 교통사고로 치료 중인 어린이 숨지다’ ‘악성 민원으로 극단적 선택해 치료 중 사망’ ‘외국인 노동자 기계에 깔려 치료 중 사망’ 등 뉴스 제목에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모두 이곳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받던 환자들이다.

이렇게 한 줄 기사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죽음에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서글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누군가는 아무런 관심과 대책도 없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죽음을 맞이한다.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은 비단 그 환자 한 명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생명을 함께 치료한다. 치료는 죽음 문턱에서 고통스러운 환자와 그 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해야 한다.

권역외상센터뿐 아니라 사회 여러 곳에서 생명을 지켜주고 있다. 최근 안타깝게 운명하신 선생님, 그 유가족의 변호사가 말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생명이 지금 이 순간에도 몇이나 되는지 모른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의 자문변호사로 안타까운 유족 변호, 수많은 억울한 선생님들 자문은 물론 생명까지 붙들고 있다. 권역외상센터, 소방 등 의료 관련 직종 사람들만 목숨을 붙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의과대학에서 예방의학이란 과목을 배운다. 예방의학이란 건강 및 건강과 관련된 위험 요인들을 조사하고 그 관련성을 연구해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한다. 코로나19 감염병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의학도 질병 예방에서부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권역외상센터는 예방 가능 외상사망률 감소를 최우선 목표로 한다. 예방 가능 사망률이란 외상 환자 사망자 가운데 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살 수 있었던 외상환자 비율을 말한다. 외상환자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외상외과의사 한 사람의 노력으로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예방해야 하고, 발생한 사고는 소방대원의 신속 정확한 초기 처치와 이송으로 시작해 권역외상센터 같은 의료기관에 도착 즉시 빠른 처치와 수술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20대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봤다. 사회적으로 제대로 도움·보호받지 못한 취약한 곳에서 맞이한 죽음들이다. 말뿐인 관리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교실, 그 흔한 구명조끼 없이 상급자의 일방적 지시만 있었던 급류 한가운데였다.

예방이란 질병·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는 일을 말한다. 기계에 짓눌려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네팔 청년에게 안전 교육이나 공장 내 적절한 배치, 안전을 지켜주는 동료 등은 없었다. 위험을 함께 예방하는 동료가 아닌 서류 처리에 급급한 회사 관리자들만 있었을 뿐이다. 혼자 외로이 괴롭고 두려운 일을 하는 그들에게 도움과 관심의 손길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반짝 관심만 받고 또다시 안타까운 희생들을 반복하는 게 우리의 냉혹한 현실이다.

예방할 방법들은 무겁고 날카로운 기계가 있는 공장에서도, 막무가내 민원에 시달리는 교실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기계 옆에서 함께 살피며 일하는 회사 관계자라면, 동료 교사가 정당히 요구하는 교권보호위원회를 함께하는 관리자라면 당연히 할 일이다. 나는 퇴근해도 휴대전화와 단 한순간 떨어져 있지 못한다. 언제든 환자 문제로 연락이 오고 혹시나 모르는 응급상황에 환자 치료와 수술을 위해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생명을 붙들고 있는 소중한 우리 이웃들이 있다. 차가운 기계가 있는 공장, 사방이 꽉 막힌 교실, 급류가 있는 강 한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은 있어야 한다. 어느 학교 교문 앞에 ‘이기적 보신주의 관리자’라고 질타하는 근조 화환이 가득했다. 함께 어울리고 둘러보며 아끼는 마음으로 주위 동료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예방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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