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5... 아들 전화번호.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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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2 5 - OOOO
아들 전화번호여!
전화해서 오라고 해!
불러줘!
3. 2. 2. 5
숫자를 또박또박 말씀하신다.
오늘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할아버지가 말한다.
나이는 80대 중반.
방금 전까지 인공호흡기에 며칠째 의존하여 간신히 숨을 쉬시던 80대 할아버지가 맞는지 다시 환자 나이를 찾아보았다.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한 신다.
3. 2. 2. 5
아들에게 빨리 전화해 줘!
목에 부종도 아직 남아있고, 의식도 정상 상태가 아닌 상태로 온 환자였기에 지금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아주 또렷하고 정확하게 아들 전화번호를 말한다. 전자의무기록에 적혀진 가족 연락처 숫자를 다시 찾아봤다.
정확하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번호가 정확하다.
아들 전화번호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기억하시는 할아버지.
순간 나는 가족들 모두 전화번호 숫자 열한 자리를 다 기억하는지 가물가물하다. 대단한 기억력, 정신력의 할아버지다.
"왜 아들을 그렇게 찾으세요?"
잠시 머뭇하던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유언하려고!"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잊었다.
2.
아주 바르게 따라오는 보호자다.
바르다는 것은, 바른 생활이 아닌 한마디 토씨, 이상 반응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과정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최근 보기 드물게, 응급실에서 처음 보는 순간부터, 모든 치료 과정에 적극적, 그리고 단 하나의 의문이나 이상한 반응이 없다. 전적으로 모든 것을 따로 오고 잘 치료해달라는 말만 한다.
나보다 나이는 조금 많아 보인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입원, 병환으로 걱정이 한가득이다. 처음 함께 온 할아버지 환자의 아들, 손녀딸 모두 걱정스럽고 슬픈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와는 초면, 의사와 보호자 관계로 만났다.
모든 치료 과정, 설명에 바로바로 응답하였으며, 친절하게 대답, 서로 간 대화에서 존중하며 대화가 오갔다. 전혀 아무런 의문이나 의심이 없는 대화로.
첫 만남은 참 애매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만났다. 정확한 이유도 잘 모르겠고, 워낙 고령에 상태도 불안정하여 어떻게 치료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이럴수록 기본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A. B. C. D. 하나씩.
그리고 보호자에게 현재 상태, 치료 방향도 솔직히 말한다.
하나 숨김도 없이, 담당 의사인 내가 곤란해하는 그 하나까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말해본다.
이 환자에게서 해결 방향, 지름길이 보호자인 아들에게서 나왔다.
아들의 진술, 환자가 평상시 먹던 약들, 약을 복용하는 습관 들에서 해결 방향이 나왔다. 한 가지 약에서 원인을 알게 되어 치료 방향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행히 근심 가득한 아들 얼굴에도 조금씩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80 중반 노인, 할아버지에게는 치료 첫 과정부터 살얼음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칫 하나라도 삐끗하다가는 낭떠러지, 저기 어딘가로 푹 꺼져버릴 수 있다. 잠시 호전되었다고 해도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다.
3.
환자와 의사.
환자 보호자와 의사.
인생사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연속이다.
살아가면서 힘든 것은 수학공식, 수능 수학 30번 문제가 아니다.
환자 치료에서도 마찬가지로 올라가지 않는 환자 혈액 수치보다 더 곤란하고 힘든 것이 환자와 의사, 환자 보호자와 의사 관계이다.
오늘도 경첩의사는 또 배웠다.
바람직한, 믿고 따라오는 보호자, 환자를 만나서 이렇게 순조롭게 치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환자를 만났을 당시, 너무 난해하고 어렵고, 더군다나 고령 환자를 만나서 곤란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사람과 사람 관계로 풀었다. 때로는 솔직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3. 2. 2. 5
아들에게 빨리 전화해 줘!
이렇게 또랑또랑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곧 아들을 만났다.
아들 손을 꼭 잡으시면서 할아버지는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에게 치료약은 바로 아들이다.
그날 아들에게 할아버지는 유언은 전혀 없었다.
다만...
"아들아! 빨리 우리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