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024년 11월 3일은 시작이다.
끝까지 걷지 않고 뛰었다.
잠이 안 온다.
자꾸 시계를 보고, 알람이 울렸는지 다시 확인한다.
알람을 세 개 맞춰놓았는데, 그래도 불안하다. 늦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설렘이 동시에 온다. 어제는 평상시와 달리 저녁 10시에 침대에 누웠다. 집이 아니기에 불편하지만 그래도 자야 한다. 내일을 위해서.
보통 출발 3시간 전에 식사, 탄수화물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5시 조금 넘어 간신히 눈을 뜬다. 미리 준비해둔 빵, 바나나로 아침식사를 한다. 부담되지 않고,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포도당이 떨어져서 힘이 빠지지 않으려면 먹어야 한다. 또한 이온음료도 보충하고, 마지막 배변도 시원하게 해야 한다. 이제 슬슬 나가야 한다.
어제 미리 서울에 숙소를 잡고 잠을 잤다. 체크아웃이 6시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 지하철 안에는 이미 동지(?), 함께 달릴 러너들로 가득 차 있다. 반갑다. 여기서 함께할 러너들은 나와 경쟁이 아닌 함께 즐기며 달려갈 러너들이다.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핸드폰 지도를 꺼내 다시 확인 안 해도 된다. 앞서가는 러너들을 따라가면 되니까.
지방에 만여 명 참가하는 대회도 나가봤지만, 이곳 3만 명, 아마 풀코스는 만 오천 명이라고 하던데, 정말 많다. 이렇게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것도 엄청난 접수 순간,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경쟁이 심했다는 팩트를 뚫고 내가 여기에 온 것이다.
이미 접수를 성공, 수개월 준비하고 이곳에 온 것만 해도 나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왕 온 김에 마지막까지 달리는 것이다.
아직도 머릿속이 암담하다. 32 란 숫자까지는 내 다리와 머릿속에 경험과 저장되어 있으나, 42.195 숫자 압박감은 더하다.
서둘러 짐을 맡겼다.
몸에 장비(?), 준비물이 다 있는지 확인한다. 위부터 모자와 헤어밴드, 선글라스, 옷에 번호표가 잘 붙어있는지도 확인한다. 무릎에 테이핑이 잘 되어있는지도 한 번 더 확인하고 허리벨트도 한 번 더 조여준다. 나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줄 5개의 에너지젤도 잘 있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신발 끈을 꽉 다시 메어준다. 이제 준비 끝이다. 한 15분 남았다. 몸을 풀어주고, 마지막 물을 살짝 마시면서, 최종 배설을 한다. 몸을 가볍게, 최대한 마음도 편하게 먹는다.
나는 E 그룹이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저 앞으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정해진 규정을 따라야 한다. 빨리 싱글, 서브 4 같은 기록을 만들어 그룹을 하나씩 당겨서 C, B로 들어가고 싶지만, 절대 기록에 목메면 안 된다. 나는 내 몸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아마추어 러너이다.
출발 1분 전.
이미 A, B, C 그룹은 출발이다. 곧 D 그룹 출발이고 E 그룹에 속한 나도 출발이다. 손목에 써놓은 숫자를 다시 본다.
10 1:02
20 2;05
30 3:12
40 4:25
마지막 숫자는 안 썼다.
이렇게 페이스를 적었다.
물론 10km만을 뛴다면 충분히 1시간 이내로 가능하지만, 오늘은 10km를 네 번 뛰고 또 2.195km 뛰어야 하는 것이다. 초반 오버 페이스는 절대 금물이다.
30km 지나서 다리를 쥐어짤 힘을 충분히 남겨놔야 한다. 꼭.
지난 하프 대회에서도 초반 오버 페이스로 20km 가까운 지점에서는 초반보다 1분가까지 페이스가 느려진 경험이 있다.
지방 촌놈이기에 서울을 지하철로만 다녔다. 그래서 서울 주요 지점, 건물을 보았으나, 서울 길을 모두 지하, 지하철로만 생각된다. 서울을 가로질러, 한강 다리는 세 개나 건너면서 뛴다고 생각하지 시작부터 설렌다. 그러나 출발부터 너무 혼잡함에 정신이 없다. 인파에 몰려 다 같이 힘차게 뛰어나간다.
단, 나는 처음부터 내 페이스로 나간다.
저기 한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시작인데 처음부터 한강이 보이고 한강 다리를 건너니 신난다. 첫 다리는 양화대교라고 한다. 아직 시작이라 힘은 충분하다. 일단 서울을 즐긴다. 다리를 건너 저기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그렇지. 저기가 여의도라는 곳이구나. 같은 페이스로 나간다. 6분 초반으로 절대 무리하지 않게 나간다. 또 다리가 나온다. 미리 예습한 바로, 저 다리가 마포대교라고 한다. 여러 오명들도 있지만, 그것 따위는 중요치 않고 나는 무사히, 그리고 페이스 유지하면서 뛰면 된다. 이제 10km 지점 표시가 보인다.
이제 10km, 1/4 이 아니라 벌써 10km 온 것이다. 시간은 1시간 2분. 딱 내가 원했던 페이스이다. 뒤를 위해 힘을 아껴야 한다. 다리, 발을 총총 뛰면서 나간다. 젤리도 먹고, 급수대에서 물도 날름 먹는다. 서울의 아침 공기는 역시 시골, 저기 아랫동네 사는 우리네 공기와 다른 것 같다. 그래도 저 넓은 한강 다리를 두 다리 총총 뛰면서 건너는 자체는 즐거움이다.
이제 첫 고비, 미리 겁먹고 있었던 언덕이 나온다.
10 ~ 15km까지 완만한 오르막이라고 한다. 급경사가 아니고, 천천히 올라가는 고도 상승, 길이라고 생각된다. 다음 서울구경은 광화문이다. 그래도 나름 명소라고 그 근처, 경복궁, 이순신 장군 동상은 가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뛰어서 오늘 그곳을 건너간다. 15km를 지나고, 이제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다. 아직 충분히 뛸만하다. 갈 수 있다.를 외친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이제 10시 가까이 되니 햇볕이 조금 내리쬐기 시작한다. 중간에 스펀지로 목덜미를 적셔준다. 저기 20km 급수대가 보인다. 이제 절반이다. 2시간을 뛰어서 서울 절반을 관통하는 중이다. 신난다. 서울구경을 이렇게 하다니?
아직 내가 생각한 스피드, 시간대로 뛰고 있다. 진짜 시작은 30km 넘어서 35km에서 온다고 한다는데,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기에 잘 모른다. 그냥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 두 다리가 튼튼한데 하면 된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 수 있는데 안 해봤잖아!'
맞다. 할 수 있는데 안한 것이다. 어디서 달리기, 마라톤을 취미로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지만, 풀코스도 한번 해보지 않고 말했다는 사실. 그리고 막연히 풀코스에 두려움으로 도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다. 안 해본 것은 시도를 안한 것이 문제다.
30km까지는 속도를 의식적으로 늦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가 처음 설정한 6분 중반대 페이스가 나온다. 내 목표는 절대 서브 4가 아니기에 지금 페이스도 딱 맞는 것이다. 마지막 다리. 잠실대교이다. 미리 예습한 바로는 1970년대 만들어진 1280m 길이 다리이다. 길다. 여기 다리를 두 다리로 뛴다는 것이 또 신기하고 설렘뿐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저 건너편에 야구장, 올림픽 주경기장, 롯데타워도 보인다. 저기도 조금 익숙한 곳이다. 그러나 이미 다리를 건너면서 30km 지점에 가까워지면서 멘탈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다시 에너지 보충, 파워젤을 먹고, 이번에는 저기 보이는 바나나도 하나 먹는다. 힘이 있어야 마지막 12km 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제 초심으로 돌아간다. 첫 10km 뛰었을 때 마음이다. 십 년도 훨씬 전에, 몸도 무겁고 준비가 안된 상태로 뛰었다. 기록도 엉망이지만 걷뛰를 반복, 뛴 후 몇 주간 다리가 안 움직였던 악몽이었다. 이제 다시 시작하여 10km 뛰는 것이다. 지난주 춘천마라톤에서 첫 풀코스 뛴 친구가 알려준 방법. 파워젤을 손에 들고 조금씩 먹으면서 뛰는 것. 그렇지. 입에 무언가 들어가면 힘이 나는 법이다. 1km 씩 더 나간다는 마음이다. 이미 페이스는 6분 후반대로 갔지만 중요하지 않다. 옆 사람, 앞사람 힐끗 보는 정신도 없다. 오로지 마지막 올림픽공원이라는 최종 목적지만 생각난다. 몇 해 전 올림픽공원에 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는 천천히 걸으면서 돌았지만 오늘을 꼭 걷지 않고 끝까지 그곳으로 뛰어가야 한다.
40km 지점에 고도 상승이 있다고 미리 보았는데, 지금 경사로 생각할 틈도 없다. 몸이 가는지, 무릎이 앞으로 나가는지, 다리, 발목이 나가는지 모르겠다. 정신없다. 숫자를 하나씩 지워나간다. 35, 36, 37, 38... 그렇다. 내가 이미 이렇게 먼 거리를 뛰고 있구나.
아침 8시에 시작해서 12시를 넘겼다. 골인 지점에서 시원한 물, 음료수 무언가를 벌컥 들이키고 싶다. 근처 편의점이라도 보이면 캔맥주라도 사서 원샷 할 자신이 있다. 3시간 30분까지 장시간, 장거리를 뛴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에너지, 그리고 근육이 기억하고 잘 움직여준다. 오늘은 추가로 약간의 대회뽕, 이틀 전부터 충분한 휴식과 카보로딩 덕분에 움직임이 조금 낫다.
이제 숫자가 바뀌었다. 40. 그렇다.
4자라는 숫자를 보면서 눈물이 난다. 내가 저 숫자를 두 다리로 경험하다니!
첫 경험하는 숫자이다. 내 몸, 발과 다리 모두 처음으로 경험하는 40이란 숫자다. 이제 나머지 2km는 덤이다. 즐긴다. 즐기면서 여기를 나간다. 이를 한 번 더 깨물면서 뛰어나간다. 절대 걷지 않는다. 손으로 허벅지를 두드린다. 양팔도 크게 돌리면서 풀어준다. 힘이 있는데 못 뛸 이유가 없잖아. 속도를 조금 올려도 다리가 움직이고 따라온다. 간다. 더 빨라진다. 앞에 걷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마음속으로 다시 나는 절대 걷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잠시 다리가 휘청이고, 종아리가 멍멍한 느낌이다. 보인다. 파스를 뿌려주시는 분들. 억지로 그분들 옆으로 간다. 내 다리에 파스를 사정없이 뿌려주신다. 뿌려주시는 파스가 다리에서 내 가슴, 머리까지 파고든다. 다시 정신이 번쩍 들고 다리에 힘이 난다. 마지막 2.195km 뛸 힘이 생긴다.
희미하게 골인 지점이 보이는 듯하다.
머리가 확 맑아지고 힘이 더 난다. 뛰어가자. 더 빨리.
골인 지점에 나는 두 팔을 벌리며 들어갔다.
황영조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 그 순간처럼.
2024년 11월 03일. 그렇게 42.195km를 걷지 않고 뛰었다.
이렇게 나는 또 하나 알게 되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해봤잖아'
글로 미리 마음 준비, 그리고 풀코스 마라톤 완주를 하였다.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잘했어!
경첩의사!
'할 수 있는데 안 해봤잖아!'
그것 봐. 해보니까 별것 아니지?
다음 대회는 알지? 내년 풀코스 어디를 나갈까?
대구마라톤? 아니면 다시 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