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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Oct 13. 2024

어쩌다, 전시 기획

01. 근데 무슨 일 하세요?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 전시기획자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돌아오는 반응이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약간은 곤혹스러운 표정과 함께. 

그리고는 곧 다시, '아! 큐레이터? 멋있으시다~!' 라며 이제야 알았다는 듯 긍정의 눈빛을 마구 보낸다. 

그러면 나는 이 익숙한 난감함에 당신의 말이 다 맞으니 이제 직업 이야기는 그만하시죠.라는 의미의 '네네. 뭐.. 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같은 일을 하는 친구 중 하나는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PPT 만드는 사람이에요'라고 한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천재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에게 업을 이해시키기 위해 필요한 장황한 설명을 우리가 필수적으로 쓰는 대표적 툴이자 누구나 아는 프로그램 이름으로 한 번에 수긍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은 비단 누군가를 만날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업(業)의 혼란스러움을 가장 강하게 느끼게 된 것은 퇴사하고 싶을 때마다 사람인, 잡코리아 같은 취업 사이트를 기웃거릴 때였다. 일단 직무 카테고리에서 기획으로 들어가 보자. 그러면 사업 기획, 광고 기획, 문화 기획, 마케팅 기획.. 온갖 기획들이 나온다. 하지만 전시 기획은 없다. 

그럼 전체 항목에서 검색을 해볼까. 이제야 몇 가지 항목들이 보인다. 박람회 기획, 이벤트 프로모션, 팝업 행사 기획 등. 

아닌데. 내가 하는 일은 이게 아닌데?  



내가 하는 일을 그럼 뭐라고 설명할까?


상대에게 민망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


'혹시 박물관에 가시는 걸 좋아하시나요? 전시관이나 체험관, 엑스포는요?

국가나 기업에서 그런 곳을 만들고자 할 때 사업에 대한 예산과 규모 등 방향을 산출하여 공유하게 됩니다. 그럼 여러 전시 회사들이 경쟁하여 사업을 수주합니다. 그리고 그 사업이 완료(개관) 될 때까지 모든 과업을 프로세스대로 수행하게 되지요. 

이때 전시기획자가 하는 일은 경쟁을 하기 위한 사업 계획서부터, 수주 이후 박물관 또는 전시관의 방향 설정, 전시할 콘텐츠 발굴, 공간의 컨셉 설정,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아이템의 기획 및 연출, 큐레이션 교육서 작성, 성공적인 개관을 하기까지 기타 등등의 작업들과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클라이언트 협의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간략히다. 매우.


우리는 콘텐츠를 매우 깊이 있게 다루지만 큐레이터(학예사)는 아니고, 공간의 컨셉을 만들고 연출하지만 디자이너는 아니고, 관람객의 행동을 예측하고 분석하여 아이템을 설계하지만 프로그램 운영자는 아니다. 어쩌면 그 조각모음들로 이루어진 융합체라는 편이 정체성에 더 가깝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알지 못하는 전시 기획이라는 영역. 

그리고 그곳에서 무한히 유영하는 전시 기획자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그래. 코엑스 출근은 안하고?'

십수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이렇게 나의 안부를 물어보는 나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참고 : 코엑스에는 매년 수많은 비상설 박람회가 개최된다. 나와는 상관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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