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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 were there Jul 13. 2022

고향이 아니라 시골이라서!

[08]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 - 하동 쥐 편


[편집자 주]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는 서울 쥐와 하동 쥐의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서울 쥐와 하동 쥐는 함께 지역을 위한 연구를 하다가 만났습니다. 서울 쥐는 여전히 서울에서 비루한 삶을 살고 있고, 하동 쥐는 지역 현장에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둘의 푸념들이 여러 청년(혹은 중년)들에게 조그마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어봅니다.


이번 여덟 번째 글은 하동 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편지들은 본 브런치와 함께 하동 쥐가 운영하는 경쟁사 블로그에도 공동 게시될 예정입니다.







니 글을 보면서 예전에 한창 고향사랑기부제를 파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어. '어떻게 이 법이 통과될 수 있을까? 어떻게 이슈 레이징 시킬까?' 고민하고, 막연히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괴로워하던 모습이 오버랩되더라. 그때 내가 찾던 정보를 말하다 보면 너에게, 또 이 제도를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모티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어쭙잖게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싶어.


당시 일본의 지방 창생 종합전략과 고향납세에 대해 구글링 하던 도중에 일본의 각 지자체별로 고향세를 통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얼마만큼의 고향세를 거뒀는지에 대해 발견한 적이 있었어. 구글 자동번역기를 통해 해당 자료를 엑셀 파일로 옮기면서 그 사업내용을 보는데 이런 부분이 눈에 띄었어!

100퍼센트 확실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주민참여예산 제도와 비슷한 방식으로 주민들이 필요한 사업에 고향세 재원을 이용하고 있었고, 그 재원의 사용 출처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으로 납세자에게 그 효용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한 듯했어.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네가 언급한 대로 지자체의 향후 진행할 특정 정책을 이 재원을 통해서 실행할 것이라고 한다면 해당 정책을 지지하는 분들의 기부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공감해. 이런 방식을 접목한다면, 좀 더 적극적인 자치와 주민참여가 선행되어야겠지. 반대로 주민이 주체로 활약하는 직접민주주의의 또 다른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니가 말했던, 답례품에 대한 풍부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기도 한 듯해. 단순한 물적 자원의 개념을 넘어서, 이런 것도 답례품이라 할 수 있는 그 무언가! “한 예로 우리 지역의 감나무를 드리고 키워서 보내드립니다.” 정도일까?(이것도 구리다고 말할 니 모습이 떠오른다.)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막 기대되네. 역시나 이제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으니까 던질 수 있는 헛소리들이구나 싶기도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더 직접적으로 연관된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지.


100명도 안 읽어보는 보고서를 단 몇 명이라도 인용해서 2차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읽게 될 확장력을 생각한다면 보다 효용감이 높지 않을까? 나부터도 지역에 있으면서 자연에 가까워짐에 따라 멀어지는 다른 현실적 사례, 다른 방식들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기도 하거든. 그걸 아는 너이기에 한 자, 한 줄, 하나의 개념을 허투루 쓰기 힘든 게 아닐까 지레짐작하게 돼. 쓰지도 않았을 너의 보고서에 미리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네 고민이 담겨있기에 말이지.


요즘 난,

현실적 어려움을 조금 겪고 있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그런 일들을 하다 보니 수입이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거든. 분명 내가 소비력이 높은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150이 되지 않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불안감을 가져. 적게 쓰고 적게 버는 삶을 선택하겠다고 해놓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욕심을 내려놓겠다고 했으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불안감을 가지는 거지. 개인 삶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경계 어딘가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실제론 그렇게 걱정할 정도가 아님에도 말이지!



그런 와중에도 행복을 이따금 느끼는 건 또 무슨 아이러니일까? 어제는 오전 내내 비가 왔었지. 비를 맞으면 산행을 하고 싶다고, 새벽 6시 반부터 친구 둘과 쌍계사 불일폭포 길을 걸었어. 한창 수다를 떨다가 어느 순간부터 대화는 없어지고, 비와 대화하기 시작한 거야. 비를 맞는 게 이렇게 시원한 일이었나? 숲 속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그 비가 내 안의 잡생각까지 함께 털어내고 있더라고. 이른 시간, 아무도 없는 폭포에 도착해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아보자며, 폭포 가장 아래로 내려왔어. 내려가는 길, 신발에 물이 들지 않게 돌만 밟고 내려가던 내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결국은 물속으로 들어갈 거면서 말이야. 하하하


잡생각들이 모두 씻겨 내려갔어. 60미터의 폭포수가 마지막 돌과 부딪히며 내게 떨어진 높이는 약 7미터 정도였을까? 아프지 않고 시원한 그 물살을 꼭 너에게 느끼게 해주었으면 싶더라. 너그 복잡다단한 관계조차 털어내어 주는 폭포수가 아닐까 싶거든.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폭포로 내려가면 안 된다는 경고장이 없더라. 경고장의 유무를 떠나, 왜 그곳에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내 안의 무엇이 있지도 않은 경고를 만들어 내었을까? 하루하루 새로워지자던 옛 성인의 말씀과는 반대로 하루하루 갈수록 그간의 경험치대로만 살아가려 하는 나의 고착화된 생각에 대해 금을 내고 있는 낙숫물이지 않았나 싶었어.


조만간 같이 가기를 바랄 뿐이야. 네가 사는 그 속에서 내가 사는 이 속으로 잠시 다녀간다면 말이지. 영원히는 아니겠지만, 그 복잡함이 씻겨간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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