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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진 WonjeanLee Nov 05. 2016

대통령의 사과: The Buck Stops Here

萬方有罪,罪在朕躬(만방유죄 죄재짐궁)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오늘(2016년 11월 5일)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분수령이다.

20만 명. 줄의 끝이 안 보인다고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아마도 처음 생겨난 듯한 촛불집회.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하고 수습을 처음 돈 날 그때의 촛불집회(경찰추산 6만 명)는 잊을 수가 없다.

원래 제 아무리 하리꼬미(집에 들어가지 않고 경찰서에서 취재하면서 잠도 자는 수습시절의 일정기간)하는

수습이라도 토요일은 쉬도록 해주는데,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가 일어나니

월화수목금토일 쉬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던 기가 막힌 나날이었다.

이젠 하리꼬미가 거의 없어졌다지만 12년 지난 지금 시점에서 기자들의 노고와 막막함, 좌절감은

그때의 나와 감히 비교할 수가 없을 거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방식이 대조된 이 글이 너무 반갑다.

사과문으로 본 대통령의 화법과

그 화법에 배어있는 정신만을 비교해본 글이다.


http://ttimes.kr/view.html?no=2016110417277761552



모든 책임은 내게서 멈춘다. "The Buck Stops Here"



33대 미국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 대통령(1945년 4월 12일~1953년 1월 20일) 박물관(미국 미주리)에 가면 그의 백악관 집무실을 재현한 책상 위에서 이런 글귀가 적힌 문패를 볼 수 있다.


"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여기서 멈춘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겠단 선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어가 없는 화법(일명 유체이탈 화법)으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끝낸 두 번째 사과.

사과의 기본 원칙을 어겼다는 김태형 소장의 지적은 적절하다.

'특정 개인'과 연루된 자기의 입장을 변명하기 바빴다.

그 특정 개인을 자기가 결정해서 친해졌고 경계의 담장을 낮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특정 개인 잘라내기다.

게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연계시키며 국민을 향해 연민을 호소했다.




다시 트루먼 대통령의 문패로 돌아가 보자.

휴가지에서 이 글귀를 본 대통령의 친구 Fred A. Canfil이

이걸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해서 트루먼 대통령 집무실로 보낸다.

1945년 10월 2일, 취임 후 5개월이 채 안된 때였다.

(외로웠던 대통령의 친구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할 것 아닌가)


크기가 두 뼘 정도인 이 문패은 월넛 트리로 돼 있고,

트루먼 대통령의 임기 내내 늘 그의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한다.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pass the buck"이란 슬랭에서 나왔다.

원래는 포커게임에서 쓰던 용언데,

플레이어가 거래하고 싶지 않은 경우 다른 플레이어에게 통과시켜서 벅(buck)을 전가하는 걸 말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여러 번 공식 성명에서 이 용어를 언급했다.

예를 들어 1952년 12월 19일 미 국방대학(national-war-college)에서 한 연설에서다.


 "게임이 끝나고 난 후 코치를 탓하기는 쉽다. 그러나 당신 앞에 중요한 결정이 놓여있고, 그 결정을 당신이 직접 내려야 한다면, 그건(남 탓하기)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 책상엔 이 경구가 있다. "


You know, it's easy for the Monday morning quarterback to say what the coach should have done, after the game is over. But when the decision is up before you -- and on my desk I have a motto which says The Buck Stops Here' -- the decision has to be made."

1953년 그의 이임사에서도 이 말이 반복됐다.


"대통령이란 누구이건 간에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를 대신해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게 대통령의 직업(일)입니다"


The President--whoever he is--has to decide. He can't pass the buck to anybody. No one else can do the deciding for him. That's his job.


트루먼 대통령의 이 사인은 1957년부터 미주리 박물관에 전시돼 있고, 미국에서 이 박물관을 갔을 때 많은 어린이들이 이 문구를 쓰고 색칠하고 접어서 자기 책상 앞에 놓으려고 이 활동지를 집어갔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실제 사이즈로 만들어서 문패를 저렴하게 팔기도 했다.


대통령은 결정하는 자리다.

헌법(제84조)에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항목을 넣은 이유는

그가 이렇게 '결정'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결정을 회피하고 심지어 그 결정을 '외로워서' 한 때 의탁했던 '특정 개인'에게 맡겼다면

그는 대통령의 일을 하지 않은 것이며,

탄핵 소추의 예외가 될 수 없는 게 아닐까.



"내 몸의 죄는 만방 때문이 아니요, 만방의 죄는 내 몸에 있음이니이다.”




<논어>는 총 20장으로 돼 있는데,

'요왈'로 시작하는 마지막 20장은 바로 이 위정자의 책임에 대해 말하면서 시작한다.


논어 요왈 20-1


堯曰:「咨!爾舜!天之歷數在爾躬,允執其中!四海困窮,天禄永終。」

요왈 자 이순 천지력수재이궁 윤집기중 사해곤궁 천록영종

요임금이 말씀하셨다.

“자, 너 순(舜)아, 영원 무한한 하늘의 내력이 네 몸에 있으니

그 가운데를 꼭 잡아라.

舜亦以命禹。曰:「予小子履,敢用玄牡,敢昭告于皇皇后帝:有罪不敢赦,帝臣不蔽,簡在帝心!

순역이명우 왈 여소자리 감용현모 감소고우황황후제 유죄불감사 제신불폐 간재제심

사해의 백성이 곤궁하면 하늘의 녹이 영영 끊어지리라.”
堯曰:「咨!爾舜!天之歷數在爾躬,允執其中!四海困窮,天禄永終。」

舜亦以命禹。曰:「予小子履,敢用玄牡,敢昭告于皇皇后帝:有罪不敢赦,帝臣不蔽,簡在帝心!朕躬有罪,無以萬方;萬方有罪,罪在朕躬。」

요왈 자 이순 천지력수재이궁 윤집기중 사해곤궁 천록영종

순역이명우 왈 여소자리 감용현모 감소고우황황후제 유죄불감사 제신불폐 간재제심 짐궁유죄 무이만방 만방유죄 죄재짐궁     


이에 대해 순임금이 또한 이로써 우임금에게 명하셨습니다.

탕왕이 말했습니다.

“나 작은 자, 이(履)는 감히 검은 숫 짐승을 제물로 바치고, 감히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느님께 밝게 아뢰오니, 죄 있는 자를 감히 용서하지 아니하나, 하느님의 신하를 폐하지 않는 것은 그를 택하심이 하느님의 마음에 있음이니이다. 내 몸의 죄는 만방 때문이 아니요, 만방의 죄는 그 죄가 내 몸에 있음이니이다.”


가장 중요한 구절은 마지막 8글자다.

萬方有罪,罪在朕躬

"내 몸의 죄는 만방 때문이 아니요, 만방의 죄는 내 몸에 있음이니이다.”

역시 위정자의 책임있는 사과를 기대케 하는 구절이다.

유학의 반구저기(反求諸己: 나 스스로를 돌이켜 바라봄) 정신이다.





어제(11월 4일) JTBC <뉴스현장>을 보면 마지막 앵커브리핑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5%의 지지율.

이번 사과는 지난 번 100초 사과보다는 진전됐고

감정에 호소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일벌백계(一罰百戒)와 사즉생(死卽生)

평소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쓰는 표현인데,

이번에는 그 당사자여 보인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항상 책임자를 발본색원하겠다고 해왔다.

이번 두 번째 사과에서도 역시 그랬다.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

박 대통령은 아직도 자기가 남에게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격해야 할 것은 자기인데도 말이다.




"The Buck Stops Here"

의 정신이

"萬方有罪,罪在朕躬(만방유죄 죄재짐궁)"

의 정신이

정말 그립다.


논어의 요왈 편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그렇게 할 경우


天下之民歸心(천하지민귀심)

천하의 민심이 돌아오고


信則民任焉(신즉민임언)。

국민들이 일을 믿고 맡기며


公則悅(공즉열)   

정의로운 세상이 돼서 모두가 기뻐한다.

고 돼 있다.


촛불집회는

대통령의 사즉생 정신을

트루먼 대통령이 말한 결정하는 대통령의 일(job)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게 '백성의 부모'라고 고래부터 불렸던 대통령에게 전하는

집회에 나간, 사정 때문에 나가지 못한 모든 국민의 진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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