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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의 순간 Nov 21. 2016

Atom Heart Mother

음악의 순간

고3 때였다. 핑크 플로이드란 밴드에 대해 처음 인지를 하게 된 게. 그때 MBC에서 대학생들이 나오는 [퀴즈 아카데미]란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인기도 많고 재미도 있어서 매주 일요일마다 그 방송을 봤는데 거기에 '집중탐구' 코너가 있었다. 출연자들이 스스로 택한 주제에 대해 문제를 내고 그걸 맞히는 거였다. 그때 한 팀이 정한 주제가 핑크 플로이드였다. 그 전에 핑크 플로이드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고 괜히 이름이 멋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되게 철학적인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인간이 어쩌고 뭐 그런 걸 가사로 표현한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곡은 뭘까요?" 하면서 나온 음악이 <Time>이었다. 그때 <Time>이 광고 음악으로 쓰여서 그게 핑크 플로이드 음악인지는 몰랐지만 이미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다. 시계 소리가 똑딱똑딱 들리는데 '아, 이게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었어?' 처음 인지를 한 거다.

다음날 레코드점엘 갔다. <Time>을 들으려고 테이프를 하나하나 꺼내서 봤는데 그 노래가 들어있는 [The Dark Side Of The Moon]만 없었다. 다른 건 뭐가 뭔지를 몰랐는데 소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게 왠지 멋있어 보여서 [Atom Heart Mother]를 샀다. 또 A면은 한 곡만 들어있어서 뭔가 있어 보이고(웃음). 집에 와서 듣는데 '이게 뭐야, 도대체?'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막 무섭고 이상하고, B면으로 넘겼는데 이것도 발라드 같은데 이상하고, 두세 번 들었는데도 영 아닌 거다. '이건 아니네'라고 생각을 하고 며칠 있다가 [Meddle]을 샀다. 왜 그런 앨범만 샀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첫 곡인 <One Of These Days>는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여서 괜찮았는데 B면 넘어가니까 또 무섭고(웃음), 몇 번을 들어도 와 닿지가 않더라. 그때 왜 그랬는지 몇 군데 돌아다녔는데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없었고, '핑크 플로이드는 나와 안 맞는구나' 생각하고 그렇게 넘어갔다.

그러다가 학력고사 100일 남기고 친구들과 백일주를 마셨다. 야자 하다 말고 친구들과 나와서 그때 처음으로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집에 와 자려고 누웠는데 책상 위에 있는 [Atom Heart Mother] 테이프가 딱 보이는 거다. 이거나 다시 들어 봐야겠다 생각을 하고 딱 틀었는데, 그때 술을 엄청 먹어서 취한 상태였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저 음악을 왜 들어야겠다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들은 [Atom Heart Mother]는 음악이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피부로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일종의 환각 같은 거였다. 코러스 들리고 첼로 소리 나오는데 '이게 뭐지? 이게 이런 음악이었나?' 미치겠는 거다. 술이 많이 취했었는데 음악 다 듣고 20분 정도 지나고 나니까 술이 다 깨버렸다. 이 방, 이 공간에서 내가 겪을 수 있는 최고의 환각을 경험한 거다.

B면은 좀 약하긴 했지만 마지막 <Alan's Psychedelic Breakfast>의 피아노 연주가 너무너무 아름답게 들리면서 '핑크 플로이드가 이런 음악을 하는 거였구나' 생각이 바뀌게 됐다. 바로 다음 날 안 가본 레코드점엘 가서 [The Dark Side Of The Moon]와 [Wish You Were Here] 몇 장을 더 사서 들었는데, 내가 처음 핑크 플로이드란 이름을 들었을 때 가졌던 뭔가 있어 보이고 뭔가 세련돼 보이는 이미지와 꼭 맞는 음악이었다. '음악이란 게 줄 수 있는 감동이 이런 거구나'라고 처음 느꼈던 게 핑크 플로이드의 [Atom Heart Mother]였다. 나중에 음악잡지 같은 걸 보면서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 프로그레시브 록이란 걸 알게 된 뒤로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듣는 음악의 70~80%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이었다. - 김경진(음악평론가/스트라디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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