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순간
2006년 10월 공군 헌병으로 입대했다. 당시 헌병 자격요건은 키 175 이상이었고, 난 176이었기에 헌병으로 입대가 가능했다. 그렇게 입대하여 2달 정도 훈련을 받고, 12월쯤 청원군에 있는 17전투비행단에 배치되었다. 보통 헌병 입대자들은 위병소에 근무하는 이런저런 장신구를 단, 걸을 때마다 철컹철컹 소리를 내는 간지 나는 멋들어진 헌병을 꿈꾸지만, 그건 극히 일부였다. 이미 잘 생기고 키 큰 신병들은 행사반으로 뽑혀갔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대부분의 못나고 키 작은 헌병들은 장신구 찰 일 없고, 위병소에 근무 나갈 일 없는 이런 저런 경비소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경비소대 중 군견소대가 결원이 가장 많았고, 세상에서 모기와 개를 가장 싫어하던 나는 그렇게 군견소대로 배치되었다.
막사 옆에는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부대 안의 온갖 처치 곤란한 쓰레기들을 묻어왔던, 아카시아로 어설프게 우거진 동산이 있었다. 그 동산 아래엔 40년 동안 품어 왔던 쓰레기로 인해 배가 터진 듯한 모양새로 견사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견사장엔 암수 14마리씩, 28마리의 셰퍼드가 살고 있었고, 곳곳에는 쥐구멍으로 보이는 커다란 구멍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역시나 곳곳에 뚫려 있는 구멍에는 들쥐들이 살았다. 들쥐들은 개가 먹다 남긴 사료를 먹거나, 종종 창고에 쌓여 있는 사료 박스에 구멍을 내고 아직 안 깐 사료를 먹었다).
상상 이상으로 비위생적이었고, 셰퍼드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커 보였다. 개 냄새, 개들의 배설물 냄새와 사료의 비린내, 그리고 어설프게 흩뿌려져 있는 아카시아 향이 섞인 오묘한 냄새는 분명 그 어디서도 맡아본 적 없었다. 이곳에서 2년을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순간, 고참이 내가 맡게 될 군견이라며 '미미'를 소개했고, 나는 고참이 시키는 대로 사료를 담은 그릇을 미미에게 들이밀며 미미를 쓰다듬어 주어야 했다. 덩치가 큰 편에 속하고 제법 사납게 생긴 미미는 5살 된 암컷이었고, 그녀는 겁먹은 나를 친절히 맞아주었다. 미미는 소대의 28마리 셰퍼드 중 가장 순하고 얌전해서 나같이 겁 많은 신병들 전용 군견이었다. 행군이나 순찰 중에 한 번도 내 옆에서 앞서 나간 적 없었고, 근처에 다른 개와 싸우거나 아무에게나 사납게 덤벼드는 일이 없었다.
보통 보초는 사수, 부사수 2명이 한 조로 나가지만, 군견소대는 사람 하나, 군견 하나 이렇게 한 조로 보초를 섰다. 군견소대는 주간이 아닌 야간 경계가 주 업무였고, 그날 밤부터 나는 미미와 함께 근무를 섰다. 군번이 꼬여 막내 생활을 오래 했던 내게 4시간의 심야 보초 근무는 유일한 휴식이었다. 그녀는 고참들과 다르게 내게 잔소리를 하지도, 갈구지도 않았고, 종종 초소에서 잠이 들었을 때 누군가 나타나면 짖어서 날 깨워주곤 했다.
헌병 소속이라 금지 물품 반입이 비교적 자유로웠고, 덕분에 휴가 때 가져온 256MB 자그마한 MP3를 들고 초소에 나가곤 했다. 노래가 50개 남짓 들어가 있었는데, 매번 휴가 때마다 업데이트해서 들어갔지만 일주일 정도면 금방 질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라디오를 더 많이 듣게 되었다. 호란이 진행하던 <푸른 밤>(얼마 안가 DJ는 성시경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을 즐겨 들었다.
하루는 라디오를 켜자마자 <푸른 밤>에 이승열씨가 나와 나긋나긋이 미국 생활을 하면서 들었던 음악들을 소개했다. 퀸의 노래가 나왔고, 이어서 피터 가브리엘의 <Washing Of The Water>가 흘러나왔다. 왠지 인트로부터 흥미로워 잽싸게 녹음 버튼을 눌렀다. 노래 내내 물속을 떠다니는 듯한데, 별 다른 의지 없이, 별 수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내게 이상하리만큼 큰 위로가 되었다. 입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시간이 가긴 가는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1년 반 후엔 나갈 수 있구나, 처음으로 확신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부유하는 시간을 지나 군대를 전역했고, 어느덧 민방위 훈련을 앞두고 있다. 전역하면 발이 땅에 닿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런 날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여전히 이리저리 부유하며 떠다니는 인생인 만큼 여전히 큰 위로가 되어주며, 여전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개 냄새, 아카시아 향이 섞인 그 오묘한 냄새가 떠오른다. - 김내현(음악가/로큰롤 라디오 보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