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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의 순간 Sep 05. 2016

무언가

음악의 순간

한 10여년 전에 네이버가 부산영화제 메인 스폰서였는데 그때 나는 네이버 전체 콘텐츠 서비스를 맡고 있었다. 부산 가면 항상 파라다이스 호텔에 내 방이 딱 있고 황금기였다(웃음). 그때만 해도 늘 휴대용 시디피와 시디 30장을 낱장으로 넣을 수 있는 케이스를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 않나? 어디에 놀러 가느냐,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듣는 음악이 바뀌지 않나. 예를 들어 기차를 타면 거의 팻 메시니 같은 음악을 들고 가고, 밤에는 '50년대 모던 재즈 이런 걸 듣고 상황에 맞게 시디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날은 숙소를 나선 뒤에 시디 케이스를 놓고 나온 걸 알게 됐다. 시디피만 들고 나왔는데 시디는 하나도 없었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데 'X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영화제가 남포동에서 열렸는데 숙소는 파라다이스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었다.


그래서 남포동에 있는 음반숍에 가서 백건우의 가브리엘 포레 시디를 샀다. 남포동은 워낙 시끄럽고 그 음반은 소리가 너무 작아서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이 아니었지만 살 만한 시디가 그것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딱 들었는데 듣는 순간 공간이 달라지는 느낌 있지 않나. 남포동에 부산영화제까지 열리니 그곳이 얼마나 도떼기시장 같겠나. 그런데 그걸 듣는 순간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곳은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고 나 혼자만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3일 내내 그 시디만 들었다.


그 뒤로 깨달은 게 있다. 보통 배경에 음악을 맞추는데 정말 힘이 있는 음악은 배경 자체를 바꾸어 버린다. 그때부터 패턴이 바뀌어서 밖에 다닐 때 클래식을 많이 듣게 됐다. 아직도 'XX에 어울리는 음악' 같은 주제가 많이 나오지만 진짜 좋은 음악은 상관이 없다. 음악 자체로 배경을 바꾸어 버린다. 지금도 부산 하면 백건우, 부산영화제 하면 백건우의 가브리엘 포레가 떠오른다. 그 경험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천 장이 넘는 클래식 시디 중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음반이 됐다. 좋은 앨범이긴 하지만 엄청나게 훌륭한 연주라거나 그런 건 아닌데 가장 아끼는 음반 중에 하나가 됐다. 그러면서 백건우도 더 좋아졌다. - 박정용(벨로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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