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예예 Dec 09. 2023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은 아침

*<아침 그리고 저녁>에 대한 스포일러는 전혀 없습니다.


스르륵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아주 적은 힘으로 산뜻하게 기상할 수 있는 귀한 날이기 때문이다. 전날 일찍 잔 것도 아닌데 충분히 잤다는 느낌과 함께 5시 반쯤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와 양치를 하고 물 한잔을 마시며 무얼 할까 생각했다. 바로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얼마 전 사두었다가 아직 읽진 못한 책. 읽고 싶었다.


오늘 아침 읽은 <아침 그리고 저녁>은 올해 노벨 문학 수상작으로 유명하지만 수상의 명예보다 제목과 작가에게 묘하게 이끌려서 사게 된 책이다. 만약 책 제목이 ‘아침, 저녁’이라든지 ‘아침과 저녁’이라면 이렇게까지 끌리진 않았을 것 같다.


'아침 그리고 저녁'


소리 없이 속으로 제목을 가만 읽어봤다. ‘그리고’가 세 글자라서 그런가. 이 한 단어로 인해 아침과 저녁이라는 시간의 가깝고도 먼 거리감이 온전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깨어나고, 시작하는 아침과 잠들고, 마무리 짓는 저녁. 하루의 시작과 끝맺음. 어떤 이야기일까. 그리고 책을 두른 띠지에 실려있는 작가의 강렬한 흑백사진. 이 책이 궁금해지는 데 작가 욘포세의 사진이 한몫했다. 작은 사진을 뚫고 나오는 작가의 품위, 기세… 누가 봐도 예술가의 얼굴이었다.


책은 한 시간 반 남짓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소설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하다 보니 어느새 결말에 이르렀다. 이야기는 단순했다. 어떤 큰 사건이나 갈등 없이 서서히 저만의 속도로 흘러갔다. 그 흐름이 참 편안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책을 읽은 시간대도 딱 적당했다. 이 이야기를 읽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알맞았다. 겨울날 해뜨기 전 아침 ~ 해가 뜨고 있는 아침 시간.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을 예정인 사람이 있다면 꼭 이 시간대에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야기의 배경인 겨울 노르웨이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코끝이 시리다고 느낀 건 기분 탓이었으려나)


책장을 덮고 오늘 아침은 생기 있는 음식이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바쁘단 핑계로 요즘 아침은 쉐이크를 먹곤 했다.) 냉장고 서랍에서 야채를 꺼내 찬물로 씻고, 충분히 물기를 털고, 소금과 레몬즙, 후추 조금과 올리브유만으로 드레싱을 해 샐러드를 해 먹고 빵을 구워 먹었다.


오늘은 침대에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아침 식사까지 모든 흐름이 순조로웠다. 서서히 식탁으로 들어오는 햇살, 다시금 떠올리며 사색하듯 더듬어보는 이야기, 신선한 샐러드와 부드러운 빵. 모든 것이 충만했다.


참 좋은 아침시간이었다. 좋은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