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뒤에 남는 것
문득문득 과거 찰나의 순간이 머릿속을 스친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사과즙을 꺼내려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초등학교 5학년 국어시간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과거’를 뜻하는 단어를 발표하라고 하셨고, 친구들은 손을 들고 ‘어제’, ‘옛날’ 등등을 이어서 발표했다. 발표하는 손들이 다 내려갈 무렵, 누구도 이 단어를 말하진 않을 거라고 확신하며 의기양양하게 손을 들었다. 내가 발표한 단어는 ‘왕년’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되어야 쓸 수 있는 단어. 50년은 더 살아야 쓸 깝량이 생기는 그 단어 말이다.
갑자기 ‘왕년’이라는 겹겹의 세월로 감친 말이 생각난 건 아마도 어제의 만남 때문인 것 같았다. 휴일을 맞아 오랜만에 만난 팔순이 넘는 고모, 그 곁에서 다시 어린 소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누나를 바라보던 환갑이 넘은 아빠. 두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며 세월을 느꼈다. 80겹이 넘는 시간과 60겹이 넘는 시간.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살아온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단어로 존재하는 시간이 감각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직 가닿지 못한 겹겹의 시간이었다.
아빠와 고모는 당신들의 과거를 얘기할 때 ‘왕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덧 그런 날이 오겠지. 시간이 가득 쌓이면 거긴 뭐가 남을까.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질까. 잘 모르겠다.
지금은 오늘이 어떤 시절의 일부로 남을지 알 수 없다.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삶에 무엇이 남을지는 늘 그 시절을 지나야 만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때가 이르고 나서야, 그제야 보이는 것 같다. 다만 오늘 할 수 있는 건 주어진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 먼 미래는 언제든 다시 지우고 그릴 수 있도록 연필로 스케치하듯 그려 나가고, 오늘은 적당한 색을 골라 칠하며 살다 보면… 인생이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