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직장생활을 ‘감정’을 따라 회고하기
마지막 퇴근 날이었다. 동료들의 다정한 배웅을 받으며 사무실을 나섰고, 집으로 돌아와 한숨 자고, 저녁까지 먹었는데도 마음은 계속 뒤숭숭했다.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과 복잡한 생각들이 여전히 머릿속을 떠다녔다. 설레거나 후련하지도, 완전히 슬프지도 않았다. 어딘가 허전하고 어수선한 마음. 이 상태를 정리하고 싶었다.
‘무엇을 써야 이 마음이 정리될까’, ‘지금 내 상태는 어떤 상태로 바뀌면 좋을까’ 혼자 머리를 굴리다, 남편 민욱이 제안한 방법으로 지난 5년간의 회사 생활을 감정 키워드 중심으로 회고해 보기로 했다.
*직장생활 중 지난 5년이 가장 일에 몰입한 시절이라 이 시간의 의미를 정리하는 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건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생각나는 감정들을 하나씩 적고, 그 감정과 얽힌 사건들, 그때의 내 생각을 꺼내봤다. 신기하게도 감정을 중심으로 회고하니 중요한 순간들이 훨씬 더 쉽게 떠올랐다. 기억을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아도 감정이 먼저 이끌어줬다.
기억과 감정을 따라 지난 5년을 다시 둘러봤다.
어떤 순간에 즐거웠고, 어떤 상황에서 힘들었는지. 무엇이 나를 지치게 했고, 무엇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는지. 이 시간을 통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즐거웠던 일들을 떠올리다 보니, 그 아래 깔려 있던 감정은 늘 불안이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방향이 맞을까’. 그런 긴장과 의심 속에서도 나는 몰입했고,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 큰 기쁨을 느꼈다.
즐거움과 불안은 상반된 감정이면서도, 늘 한 세트처럼 함께 있었다.
그런데 모든 불안이 즐거움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즐거움과 연결되지 못한 불안은 대개 ‘외로움’으로 남았다.
특히 치프들과 함께 일할 때, 실무자로서 느꼈던 고립감은 컸다. 혼자 결정해야 하고, 누구에게도 충분히 상의할 수 없었던 시간들. 사소한 잡담으로 긴장을 풀 동료가 없던 그 시기엔, 협업 부서 사람들이 한 팀으로 와서 미팅을 하고 웃으며 회의실을 나서는 모습조차 부러웠다. 그때 나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
하지만 불안이 늘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라는 의심 속에서도 꿋꿋이 밀어붙였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었을 때, 난 더 단단해졌다.
그렇게 얻은 자긍심과 자부심은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주는 가장 큰 근육이 되었다.
‘신남’이라는 단어 아래 생각나는 일들을 적으며 미소가 번졌다.
그 감정에는 지난 반년 간 팀원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함께 일할 동료가 있다는 것, 같은 목표를 향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는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불안이 즐거움 되는 길, 그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있었다.
‘이게 진짜 될까?’ 하는 불안을 안고 긴장하며 작업하고, 조심스럽게 결과를 확인하고, 그렇게 마침내 얻은 즐거움. 긴장된다면 그건 곧 즐거움에 이를 거란 뜻이기도 했다.
회고를 마치고 가장 선명하게 남은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경험들을 대부분 할 수 있었던 곳.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회를 충분히 만나게 해 준 회사였다.
그 안에서 나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많이 성장했다.
이제는 그동안 가장 큰 자리를 차지했던 ‘직장인 자아’를 잠시 옆으로 밀어 둔다. ‘부모 자아’와 바통터치다.
육아라는 노동, 부모라는 역할. 아직은 낯설고 두렵지만, 이 변화의 시작을 잘 맞이하고 싶다.
첫 세팅을 잘해야 복직 후를 비롯해 앞으로의 삶도 더 단단히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삶은 살아내기 나름이고, 난 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