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직감적으로 미래를 알고 있었던 걸까.
“이거 자칫하면 넘어져. 어디 걸든지 치우든지 해!”
설치해야지 하고선 미루다가 현관에 방치해 둔 전신거울이 있었다. 현관장에 비스듬히 잘 세워두었고, 1년간 별일 없었다.
하지만 어제, 엄마의 경고는 실현되고 말았다.
아기를 봐주러 오신 아버님과 현관에서 인사를 하던 중 거울이 넘어졌다. 다친 사람은 없는 듯했고, 다시 거울을 잘 세우고 아버님을 배웅해 드렸다.
그리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난 아기를 앉은 채로 주저앉았다. 주체할 수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고, 엄지발가락은 이미 얼얼한 열기로 가득했다. 통증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괜찮은 척 웃으며 아버님을 배웅했던 내 모습이 마치 거짓말 같았다.
사실 거울이 넘어지며 다친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나였다.
거울등은 내 엄지발가락을 정확히 찍어 내렸고, 얼얼한 열기가 발가락 전체로 퍼져나가 욱신거리고 있었다. 순간 판단력으로 아버님이 놀라실까 웃으며 배웅을 했지만 통증에 장사 있나.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남편은 아기를 받아 들고 내 발가락을 살핀 뒤 근처 정형외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늦게까지 하는 곳이 주변에 있었고 병원에 다녀온 결과는…
“엄지발가락 뼈에 금이 갔어요.
회복하려면 3-4주 걸릴 거예요.”
물리치료를 받으러 누워서 남편에게 카톡으로 상황을 알렸다. 눈물이 글썽한 이모티콘 답장을 주고받다가 치료가 끝났고 반깁스를 한 채로 병원에서 나왔다. 엄지발가락이라 다친 부위뿐 아니라 종아리까지 깁스를 해서 오른쪽 신발 한 짝이 남았다. 간호사님에게 신발을 넣은 검은 봉다리를 받아 들고 빌딩을 나와 신호등 앞에 섰다.
평소 짧다고 생각해 본 없던 신호였는데 발을 절뚝이다 보니 겨우 제시간에 신호등을 건넜다. 그리고 그제야 서러움과 함께 우울감, 무력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제 요즘 내 낙이었던 산책과 러닝은 못하는 건가? 육아를 지탱하는 힐링타임인데..’
‘다음 주 토, 일 양가 가족들을 불러 집에서 백일잔치 하기로 했는데.. 절뚝거리며 상 차려야 하나?’
‘당장 7킬로짜리 아이를 들고 앉았다 일어섰다는 어떻게 하지?’
‘이번 주에 어린이집 상담 가기로 했는데?’
욱신거리는 발가락, 절뚝이는 발이 문제가 아니었다. 발보다 마음이 더 아팠고 무력감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 같이 아이를 씻기고 재웠다. 잘 자지 않고 보채는 아기 때문에 마음을 수습할 겨를은 없었다. 자면서도 발가락이 욱신, 지끈거렸다.
아침이 되고, 아침을 먹은 아이는 고맙게도 잘 자주었다. 비로소 마음을 수습할 시간이 생겼다.
식탁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친 채 가만 고요 속에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라앉길 반복했고, 멀찍이서 보니 좋아 보이는 생각이라곤 없었다. 생각에 잠식되고 싶지 않아서 저건 내 것이 아니라고, 불을 끄듯 머릿속 화면을 껐다.
그리고 나를 일으키는 말을 꺼내 뱉었다.
“하체를 못하면 상체를 하면 되지!”
함께 운동하던 사람들과 장난식으로 주고받던 얘기였다. 상체를 다치면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로, 실제 우리들의 삶의 태도이기도 했다. 이 말에 힘을 받아 곧바로 방문에 설치해 둔 철봉으로 갔다. 등운동과 복근운동으로 몸을 움직이자 마음도 움직였다.
‘산책이야 목발을 짚는 건 아니니까 살금살금 다녀오면 되는 것이고, 러닝은 못하더라도 이참에 미뤄둔 상체운동을 열심히 해 볼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어차피 날이 추워져서 전처럼 2시간 산책은 무리였다.
‘백일잔치? 이미 백일상 대여, 떡 주문, 아기 한복 대여, 가족과 일정 잡기 모든 걸 끝냈다. 상을 차리고 테이블을 옮기는 일들은 내가 다치든 말든 가족들이 도울 일이었다’
‘육아? 남편이 안 도와줄 리 없다. 나도 되는대로 상황에 맞게 아이를 케어하면 된다.’
‘어린이집 상담? 세 곳 모두 남편과 함께 가기로 했고, 상담이야 입으로 하는 거니까. 이미 질문리스트도 만들어 두었고.”
할 수 없는 것들에 눌려 가라앉던 마음이, 어느 순간 방향을 바꿔 할 수 있는 것들을 향해 천천히 떠올랐다.
머릿속이 맑아지고,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돌이켜보면 거창한 깨달음은 아니다.
그동안 살아오던 방식이 다시 힘을 발휘했을 뿐이다.
늘 하던 대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천천히 추슬렀다.
결국 삶은 그런 태도의 반복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조금씩, 그러나 계속해서 같은 태도를 선택할 때 생기는 힘.
어쩌면 그게 나를 다시 앞으로 밀어올리는 삶의 관성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