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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희 Sep 15. 2020

[기고]'네시렐라' 엄마는 육아도 하고 창업도 할 거야

[책방지기 엄마의 그림책 이야기 15]

[책방지기 엄마의 그림책 이야기] 육아 말고 뭐라도 하는 엄마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책방에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조용한 나날이 이어졌지만, 기분 좋은 소식으로 8월을 마무리했다. 2020년 여성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2등 우수상을 받았다. 수상한 아이디어로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도 선정이 되어 하반기엔 예비 사회적 기업도 준비하게 되었다. 스타트업 기업 대표인 남편과 가족들의 응원 속에 9월을 시작했다.


어느덧 2020년 9월. 결혼 후 이틀 만에 임신. 올해 1월 출산하고, 한 달 만에 복직했다. 출산하고 6개월도 안 됐는데 몸무게가 20kg 남짓 빠져 몸도 마음도 성치 않던 시간. 거기에 코로나19로 친구나 지인과 만나는 일도 자제해 누구에게 속내를 내비치기도 어려운 나날이었다.


그러나, 신세 한탄은 여기까지. 모든 건 스스로 선택한 일이므로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오후 네 시까진 책방 대표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간. 나는 '네시렐라'(자정까지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의 상황에 빗대어, 오후 네 시면 어린이집에 간 아이를 집에 데려오는 엄마들의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편집자 주) 엄마이기에, 진짜 ‘육아 말고 뭐라도’ 해서 성과를 내야 했다. 이런 나를 위로해 준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과 영화였다.



◇ 뭐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게 ‘오후 네 시’까지뿐일지라도



「육아 말고 뭐라도」 표지. ⓒ세종서적



창업하면서 멘토를 만난 적이 없었기에, 내게는 나와 같은 과정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절실했다. 직접 만날 수 없으니 책으로라도 만나야만 했다. 그렇게 집어 든 첫 책은 「육아 말고 뭐라도」(김혜송, 이다랑, 원혜성, 김미애, 김성, 양효진 지음, 세종서적, 2019년)이다. 


이 책은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진행한 ‘엄마를 위한 캠퍼스’에서 창업한 총 여섯 명의 엄마를 소개한 책으로, 실패와 시행착오로 똘똘 뭉친 이른바 ‘현타’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책에서 나는 ‘육아 말고 뭐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창업 경험자들이 건넨 글귀들로 위로를 받았다.


나는 매일매일 ‘자아’라는 유리 구두를 신고, 오후 네 시가 되면 그 유리 구두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그렇게 매일 유리 구두를 신고 벗는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굳은살 하나 박이지 않는 오후 네 시의 신데렐라로 사는 일상. - 「육아 말고 뭐라도」 중에서


얼마를 벌고, 어디서 일하고,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당시에는 내가 육아 말고 뭐라도 하고 있다는 그 자체, 스스로 돈을 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닥을 긁고 있던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았다. 한 번 성취감을 맛보다 더욱더 일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 「육아 말고 뭐라도」 중에서


동화 속 신데렐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후 네 시까진 오롯이 나로 살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네시렐라 엄마’라도 좋다. 얼마를 버는 것보다 무언가 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를 느끼는 요즘이지만, 그 감사함이 하루를 미처 못 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연장으로 매출이 지난달의 절반도 안 되는 요즘, 잊은 줄만 알았던 슬럼프가 슬금슬금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직원 급여 주기도 벅차 낙심한 내 모습이 미워 새로운 책을 꺼내 들었다.



◇ 엄마가 된다는 것은 '기업가 정신'으로 스스로를 중무장하는 일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표지. ⓒarte



엄마이자 기업가인 나.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혜린 지음, arte, 2018년)란 제목부터 깊이 공감했다. 그렇다. ‘엄마의 속도’. 지금 나는 엄마의 속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사실 우리들은 엄마가 되면서 기업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업가 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항상 기회를 추구하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혁신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해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하는 생각과 의지’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 기업가 정신을 자연스럽게 탑재하는 과정이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비즈니스라는 유기적인 생명체를 키워나가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진짜 생명을 키워내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 생명이 그냥 화초처럼 순하고 곱게 크는 게 아니라 얼마나 난리법석을 치며 커가냐는 말이다. -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에서


이런 맥락에서, 최근 직원의 권유로 「10인 이하 회사를 경영하는 법」(이시노 세이이치 지음, 김상헌 옮김, 페이퍼로드, 2020년)을 읽고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직원은 사장의 뒷모습을 본다고 한다. 직원은 자신감 있는 사장과 함께 일하고 싶고 이것이 바로 기업가의 이치라고 한다. 나는 그 이치에서 어긋난 기업가가 되고 싶지 않기 위해 힘을 내기로 했다.



◇ 대박 아니어도 괜찮아, 그렇게 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니까 



영화 「조이」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자신이 꿈꿨던 인생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지쳐가던 어느 날,

깨진 와인 잔을 치우던 조이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아주 멋진 것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어릴 적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한 조이는 상품 제작에 돌입한다. - 영화 「조이」 소개 중에서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한 동반자는 바로, 우리 아들과 이름이 같은 영화 「조이」. 이 영화는 지난 2016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조이 역의 배우 제니퍼 로렌스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꿈과 웃음을 잃지 않았던 엄마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실제 주인공이었던 조이는 미국 홈쇼핑 역사상 최대 히트 상품을 발명하면서 수십억 불 대의 기업가로 성장했다.


영화 속 조이처럼 늘 머릿속으로만 궁리하던 아이디어를 실제로 이룰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지난 6월 어느 주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엘리베이터 앞 광고 게시판에서 여성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공지를 봤다.


그리고 용기를 내 지원했고, 처음 시도해보는 화상 면접으로 PT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우수상을 받았다. 운 좋게, 이 아이디어로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에도 참여했다.


이렇게 ‘네시렐라 엄마’는 육아도 하고 창업도 했다. 지금의 도전들이 영화처럼 대박은 아니어도 감사하다. 육아 말고 뭐라도, 엄마의 속도로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길에서 나는 또 성장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그렇게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됐다. 


책방지기 엄마의 역할에 충실히 살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다시 책방에 찾아올 어린이 친구들을 위해, 기업가라는 멋진 꿈을 담은 그림책을 준비해뒀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따라 책방에서 다시 반갑게 인사할 날을 기다린다.


*칼럼니스트 오윤희는 생일이 같은 2020년생 아들의 엄마입니다. 서울 도화동에서,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커피와 빵, 책방과 정원에서 행복한 삶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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