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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배 Jun 10. 2018

작게 빛나는 푸쉬카르

그릇 안의 푸쉬카르, 소누주스 무슬리

"어디서 왔니?"


자이살메르에서 푸쉬카르를 가기 위해서 아즈메르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6개의 자리가 한 칸으로 이루어진 슬리퍼 클래스. 후진 시설과 더러움으로 흔히들 설국열차의 꼬리칸이라고 부른다. 나와 같은 칸엔 인도인 가족이 자리했다. 13살 누나와 11살 남동생이 말을 건다. 어린데도 영어를 곧잘 한다.


"메라 남 행배 헤"


이 아이들이 알려준 힌디어다. 내 이름은 행배입니다 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힌디어로 자기소개하는 법을 배웠다. 기억나는 건 이름 알려주기 뿐이지만 힌디어로 내 이름을 이야기하자 옆 칸의 인도인들까지 몰려와 웃으며 박수를 친다.  계속 시켜서 계속했다. 나로 인한 순수한 웃음이 보기 좋아서 계속했던 것 같기도 하다.


메라 남 행배 헤!


자기네 집에 꼭 놀러 오라고 지도까지 펼치며 알려주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차에서 내린다. 꼭 가겠다고 했지만 내가 가기엔 너무 멀고 외진 곳이다. 그 아이들은 나를 기다렸을까.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를 보고 푸쉬카르로 향하는 버스가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너희들도 푸쉬카르로 가니?"


아무리 기다려도 푸쉬카르로 가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 분명 여기서 탄다고 했는데... 여기서 타는 게 맞긴 한가보다. 목 빠지게 저 멀리 버스가 오는지 보는 여행자만 다섯이다.


"푸쉬카르로 가는 버스는 없어. 내 택시 타면 한 명에 100루피에 가줄게."


거짓말인 걸 알고 있다. 택시비도 분명 바가지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왜 이리 안 오는지. 여행자들과 모여 택시를 잡아 푸쉬카르로 향한다. 아름다운 호수 마을이라는 푸쉬카르. 우다이푸르 같은 느낌인가. 비슷한 곳은 가기는 싫은데. 하지만 무슬리(온갖 과일에 커드나 아이스크림을 올려주는 음식)가 일품이라니 꼭 가봐야 한다.


해봐야 우다이푸르 정도 호수마을이겠지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작다. 작은 대신에 잔잔한 아름다움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우다이푸르 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느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호숫가 가트를 맨발로 걷는다. 굳이 왜 맨발이냐고? 벗으라고 해서 벗었다. 신발을 벗어라길래 엄청 깨끗하게 관리 하나보다 했더니 웬걸 신발보다 훨씬 더럽다. 소똥, 새똥, 개똥의 똥 콜라보에 알룩달룩 물 때가 조화를 이룬다. 맘에 드는 어울림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가트에 신발 같은 신문물은 어울리지 않을 거란 헛생각도 들었다.


가트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일몰. 푸쉬카르는 고아, 마날리와 함께 인도에서 히피들의 3대 성지라고 불린다. 일몰이 색칠하는 가트에서 그들은 가진 각자의 장기(곤봉, 훌라후프, 저글링 등)를 연습하고 노랫소리로 호숫가를 가득 채운다.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꽤나 즐거운 분위기다.  


가트에 앉아 멍하니 있다 보면 찾아오는 일몰


여행자들에게 쇼핑으로 유명한 푸쉬카르. 메인 거리로 나가면  온통 옷가게와 기념품 가게로 가득하다. 형형색색의 옷가지에 거리는 더욱 정신없다. 거리 가득한 상점들 중 유독 많은 사람들이 앉아 무언가 먹고 있는 가게가 있다. 소누주스 가게다.


푸쉬카르 명물 소누주스. 소누 주스는 사실 푸쉬카르의 목적이었다. 물론 주스도 맛있지만,  소누 스페셜 무슬리가 일품이다. 신선한 과일들과 시리얼 위에 무심하게 끼얹은 커드. 이 조합이 설마 맛이 없을 수가 있나. 비타민에 몸이 반응한다. 한 끼 식사로도 뚝딱. 혼자 거창한 걸 먹는 게 귀찮았던 나에게 딱이었다.  이후 어디서 먹은 무슬리도 소누주스만 못했다.


비비다 말고 찍은 사진이라 지저분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정말 맛있다.


"나 너 알아. 너 우다이푸르에 있었지?"


밤거리 산책을 마치고 숙소 루프탑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내 방이 옥탑방 이여서는 아니었다. 독일인 친구 크리스는 나를 우다이푸르에서 봤단다. 신기하네. 그러고 보니 이 친구... 우다이푸르 팹 아저씨네 주스 가게에서 내 옆에 앉아 수박주스 먹던 걔잖아? 크리스는 한국 여행도 많이 와봤다고 한다. 이메일이라도 물어볼 걸. 여행하면서 만난 친구들과 사진 한 방 찍지 않은 것,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은 것이 후회로 다가온다.


푸쉬카르엔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암리차르행 기차 시간표와 맞지 않아 이틀 만에 발을 뗀다. 해봐야 호숫가를 둘러 이루어진 마을이 거의 전부지만, 푸쉬카르는 잔잔하고 여유로운 호수와 아름다운 일몰을 가지고 있다. 아쉬움을 달래고 시크교의 성지 황금사원을 보기 위해 암리차르로 떠난다.


항상 새로운 어딘가로 떠날 땐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교통수단을 가장 많이 이용해야 하는 경우이기에 정신을 차려 사기와 바가지에 대비해야 한다. 누가 봐도 긴장한 모습의 여행자가 배낭을 메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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