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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배 Jun 14. 2018

인도의 황금 연꽃, 암리차르 황금사원

그 찬란한 아름다움

암리차르는 오직 황금사원 하나만을 위해 가는 도시였다. BBC에서 황금사원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중 하나로 선정했다고 하던데, 괜히 기대만 커져서 실망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한두 명이 말한 것도 아니고 BBC라는데 당연히 그 이유가 있겠지. 빨리 황금사원만 보고 시원한 맥그로드 간즈로 넘어가야겠다.  암리차르로 향하는 기차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내 자리 앞에 선 인도인 아저씨.


"무슨 일이야? 여기 내 자린데?"

"아 맞아 아마 그럴 거야 근데 내 자리야."


뭐라는 거야 장난하나? 또 예상 못한 곳에서 싸워야 하네. 복식호흡을 준비하던 나에게 차장이 오더니 둘이 같이 앉아서 가란다. 알고 보니 걸어놓았던 웨이팅이 풀려 자리를 컨펌받은 줄 알았는데, 그게 RAC좌석이란다. 역무원은 왜 말을 안 해준 거지. 인도가 그럼 그렇지 뭐. 별 이상한 것도 다 만들어놨네. 슬리핑 기차 한 자리에 두 명이라니. 그럼 불편하게 앉아서 가야 하나?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나랑 같은 자리에 배정받은 인도인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 더 편한 자세로 가려는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너 그냥 이 자리 혼자 쓰면 돼 편하게 누워서 가라고 친구"


한창 내 몸을 아저씨 쪽으로 밀고 있던 중, 차장이 인도인 아저씨에게 다른 자리 하나를 내주었다. 불쌍한 척을 한 것이 아무래도 통했나 보다. 하마터면 새우잠 잘 뻔했네. 그랬다면 암리차르는 가보기도 전에 싫어졌겠지.


북인도 펀자브 주의 주도 암리차르.


"50루피. 그 이상은 절대 못 줘."


인도에서 사이클 릭샤는 처음이다. 황금사원을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달려드는 릭샤꾼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겼다. 50루피로 흥정을 보고 자전거에 몸을 실었는데, 이 아저씨 달리다 말고 계속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돈을 더 달라는 거겠지. 어쩌라고. 힘들면 일을 하지 말던가. 후에 안 사실은 기차역에서 황금사원까지는 30 루피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릭샤꾼 얼굴이 생각난다. 나는 아직 멀었네.


시크교의 성지 암리차르 황금사원. 평등과 관용의 세계적인 상징 같은 곳이라는 이곳에선 현지인들 뿐 아니라 여행자를 위한 무료 숙소, 식당을 운영한다. 공짜 잠에 밥이라니. 에어컨도 작동 안되지만, 무료로 자게 해준다는데 더위가 대수랴. 가난한 여행자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원봉사자인데, 베푸는 삶을 실천 중이란다. 이 종교 아주 괜찮잖아? 이 참에 종교를 하나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직 황금사원은 들어가기도 전인데 벌써 마음이 푸근하다. 일단 합격이야. 황금사원만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어.


"너 와가 보더 다녀왔어?"

 

배정받은 내 침대에 짐을 푸는 중 프랑스인이 와서 국기 하강식에 대한 정보를 묻는다. 나도 모르는데. 암리차르 인근 국경 지역 와가에선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기 하강식이 매일 진행되는데, 그게 또 재밌는 볼거리란다. 황금사원의 야경을 보기엔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보고 와도 충분하겠다. 적당히 시간을 죽이려고 간 국기하강식은 보지 않았으면 아쉬울 만큼 진풍경을 자랑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양쪽 군인들이 서로 강하고 절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오버해서 제식 퍼포먼스를 펼친다. 솔직히 멋있다기 보단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인도인들의 뜨거운 반응이 장관이었는데, 모두 일어나서 흥분 상태로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식이 진행되기 전에 거리로 나가 다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은 전국 노래자랑과 흡사했다. 뜬금 없이 춤을 추는 인도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다.



모든게 순조롭다. 마음에 드는데? 지금까지의 암리차르는 꽤나 만족스럽다. 이제 메인인 황금사원만 남았다. 황금 사원만 남았는데, 배가 불렀는지 감흥이 떨어졌다. 이 정도면 뭐 황금사원이 별로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해봤자 그냥 사원이겠지. 뭐 다를 것이 있겠어? 사원은 질리도록 봤는데 유명하다니까 대충 한번 보고 나와야지.


멍청한 여행자의 바보 같은 의심이었다. 이게 말이 돼? 눈 부신 황금사원은 우아함 그 자체였다. 황금사원이라는 이름 말고는 대체할 이름이 있을까. 호수 위에 떠있는 사원은 금의 황홀함 그 이상이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눈과 머리에 꾹꾹 눌러 담고 싶어 그 자리에 앉아 1시간 동안 황금 사원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헛웃음이 나온다. 이런 게 세상에 있다니. BBC가 뭘 좀 아는구먼. 죽기 전에 꼭 봐야 한다더니 이걸 못 보고 죽은 사람들은 꽤나 억울할 것 같았다. 말을 뺏어 가는 아름다움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사원은 밤새 빛을 잃지 않았다.


사진으로 실제의 아름다움의 절반도 담지 못한다.


인도가 조금 좋아지기 시작했다. 큰일이네 인도에 정 붙이면 안 되는데. 황금사원의 감동을 마음에 눌러 담았다.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 릭샤꾼과 사기꾼들의 부름에도 웃을 여유가 생겼다. 어느새 질끈 잡고 있던 여행자의 배낭끈에 여유가 생겼다. 티베트의 망명 정부가 있다는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로 간다. 무엇보다 티베트 음식이 그렇게 기가 막힌다는 이야기에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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