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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배 May 30. 2018

붉은 빛의 요새, 조드푸르

김종욱의 조드푸르, 민호네 수제비

"메헤랑가르 포트까지는 10km가 넘는다고! 그러니까 600루피야!"

"무슨 소리냐? 내가 지금 지도로 보는 중인데 5km밖에 안된다 100 이상은 안 줘."


또 시작이다. 인도인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결국 150루피에 흥정하고 릭샤에 몸을 실었다. 따듯한 바람에 기분이 나쁘다. 이 예의 없는 릭샤 왈라 때문에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다 왔어 여기가 메헤랑가르 포트야 걸어서 1분이면 가. 더 타고 가고 싶으면 돈 더 내."


열이 뻗친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는 걸 왜 아직 모를까. 흥분하면 안 그래도 짧은 영어가 더 안 나온다. 꺼져라는 말을 한국어로 소리치고 백오십을 던졌다.

당했다. 아무리 걸어도 안 나온다. 1분이 아니고 30분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메헤랑가르는 눈에만 보였다. 40도를 넘는 더위에 오르막을 걸으려니 죽을 맛이다. 속에는 릭샤꾼에 대한 화가 가득했다. 다시 만나면 가만 두지 않으리.


"이 방은 하루에 100루피야"


겨우 겨우 도착한 숙소는 컨디션이 아주 꽝이다. 가격은 100루피. 응? 100루피? 이 방이 하루에 100루피? 한순간에 방은 꽝에서 스위트 룸으로 격상됐다. 옥상에 환상적인 뷰까지 가지고 있는 스위트 룸이다. 방금 전에 사기를 당하고, 땀을 쏟으며 걸어 다녀도 1700원도 안 되는 방을 찾으면 기분이 좋은 머저리다. 잘 찾아왔으면 됐지 뭐.


영화 <김종욱 찾기로> 유명해진 조드푸르. 내가 찾던 조드푸르는 공유도, 임수정도 아닌 메헤랑가르 포트였다. 인도에서 가장 크다는 메헤랑가르 요새. 조드푸르는 단지 이 요새를 보기 위함이었다. 언젠가 본 메헤랑가르의 야경은 인도 여행에 대한 설렘을 키워주었다.


파란 골목의 조드푸르.


"조드푸르는 꼭 가보세요. 너무 좋았어요"

"조드푸르 한식이 진짜 맛있어요"


조드푸르는 왠지 나를 오래 붙잡아 둘 도시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조드푸르는 나한텐 없었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었지만, 내 눈을 끄는 볼거리도, 입을 사로잡는 먹거리도 없었다. 조드푸르의 푸른 전경, 세계에서 가장 큰 우물이라는 스텝웰, 공유가 먹었다는 시계탑의 오믈렛도 그냥 시시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동네 아이들의 수영장, 스텝웰


그럼 네가 찾던 메헤랑가르 포트는 어땠냐고? 끝내줬다. 그렇지 내가 감히 너를 빼고 조드푸르를 논했네. 숙소 루프탑에서 본 메헤랑가르 성은 가지고 있던 실망을 지워 줄 만큼 아름다웠다. 3일 동안 조드푸르에 머물며 제일 잘한 일은 메헤랑가르의 야경을 매일 본 것뿐이었다.



숙소 루프탑에서 본 메헤랑가르 포트


블루시티 조드푸르. 이곳엔 유명한 몇 개의 한식당이 있다. 우다이푸르의 소니 아저씨네 닭볶음탕 때문에 한식에 대한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다.


"형님 어서 오세요~ 내 이름은 민호예요~"


당황스럽다. 그의 한국어 실력을 보아하니 엄청난 요리 실력의 소유자인 게 분명하다. 한국어를 잘 하는 만큼 한국 음식도 잘하겠지. 잘 해야지.


이래선 안된다. 한국어를 저렇게 잘하면서 한국요리를 이렇게 맛없게 만든다고? 이건 사기야. 말이라도 좀 못하던가. 그의 김치볶음밥과 수제비는 딱 조드푸르 같은 느낌이었다. 기대를 박살 내버리는 맛.


민호가 끓여준 수제비


수제비에 상처 입은 내 혀는 조드푸르 시계탑 옆의 카페 샌드위치에 치료받았고, 20루피짜리 마카니아 라씨라는 약에 회복했다. 이 친구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의외의 것에서 휴식을 얻은 기쁨은 특별했다.


매일 먹은 시계탑 옆은 샌드위치.


조드푸르에 대한 평은 칭찬일색이었기에 더 실망이 컸는지도 모른다. 내 조드푸르가 실망이었다고, 타인의 조드푸르가 실망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의 행복했던 경험이 나와 다르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우린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까, 다른 경험을 했을 뿐.


블루시티 조드푸르.


아름다운 야경의 메헤랑가르 포트, 그리고 계란 비린내가 나는 민호의 수제비가 나의 조드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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