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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배 May 27. 2018

소니네 우다이푸르

끓어오르는 우다이푸르, 소니네 닭볶음탕.

함피에서의 늘어지는 생활을 끝내고 뭄바이를 거쳐 라자스탄으로 넘어왔다. 뭄바이는 같은 대도시인 첸나이와 비교했을 때 아주 양호했다. 깨끗한 거리와 메트로, 좀 비싸지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망고 주스는 뭄바이의 기억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빨래터 도비가트. 뒤의 현대적인 건물들과 빡빡한 빨래터와 뺄래꾼들의 삶이 대조적이다.


"남인도 사람들은 착하지, 북인도 가면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니까 조심해"


함피에서 많은 도움을 준 산토시가 해준 말이다. 남인도 사람들이 순수하다고? 나 남인도에서 사기로 80만 원 넘게 썼는데? 오기가 차오른다. 앞으로 절대 사기는 안 당하겠다. 싸워야 한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큰소리를 내야 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라자스탄 주. 그중 뭄바이를 기준으로 가까운 여행지인 우다이푸르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혼 여행지라는 화이트 시티 우다이푸르. 그곳엔 유명한 한식당이 있는데 닭백숙과 닭볶음탕을 기가 막히게 하는 한국말 잘하는 인도 아저씨가 주인이란다. 호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거대한 승리를 이룬 후 닭을 씹어야지.


화이트시티 우다이푸르.


릭샤 흥정을 깔끔하게 끝내서 그런지 우다이푸르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피촐라 호수를 둘러 소, 릭샤, 오토바이와 차들이 뒤엉킨 우다이푸르는 정신없지만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뭐야 여기엔 인도 여행하며 처음 본 와인 스토어도 있다. 맥주라니. 좋아 여기 느낌 왔어. 탐색전을 하는 와중에.


"아~주스 졸라 맛있다!!"


인도인 주스 가게 사장 팹 아저씨가 소리 지른다. 라자스탄에 한국인이 많다고 하던데 그 영향인 자 걸어 다니면 전부 '안녕하세요 친구'라고 소리치는 인도인들이다. 조심하자


걷다 보니 우라지게도 덥다. 3월부터 5월까지는 한 여름인데 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비수기라 전체적으로 저렴한 숙소 가격에 마음이 편하다. 생각을 고쳐먹자. 뜨겁게 달궈지는 라자스탄의 더위는 팹 아저씨네 주스 한 잔이 조금 식혀주고, 숙소 루프탑에 앉아 일몰과 야경을 보며 마시는 맥주에 어느새 꽤 버틸만한 더위가 된다.


"우리 숙소는 술 반입 안돼"

"어.. 몰랐어 그래도 어떻게 사 온 것만 마시면 안 될까?"

"여기선 야외에서 술 먹는 거 불법이야. 그리고 우리는 엄격하게 술을 금지하고 있어. 정 마시고 싶으면 100루피 내고 루프탑 가서 마셔."


썩 불쌍한 척을 했더니 그냥 올라가란다. 올라가 맥주를 따고 마시는데 인도 친구 한 명이 내 앞에 앉아 맥주를 주문한다. ??? 뭐야 여기 술 금지 아니었나? 냉장고에 맥주가 가득하다. 불법이라며,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너희의 엄격한 규칙은 어디 갔니. 자기네들 술을 팔기 위함이었나. 언제쯤 인도인들의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을까.


우다이푸르 일몰.


"I'm 맥주 호랑이. if you want to drink 맥주, 저녁에 오세요."


라는 말을 한다. 소니 아저씨다. 한국 사람인가 했다. 소니네 식당 인기 메뉴는 닭백숙과 닭볶음탕. 아저씨가 직접 고추장을 담그신단다.


'이 맛을 인도인이??'


압력 밥솥에다가 끓여주는 닭백숙과 볶음탕이 예술이다.
소니네 닭볶음탕.


아저씨가 만든 닭볶음탕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엄마가 해주던 맛이었다. 반칙이다. 인도에서 닭볶음탕이라니 이 정도면 한국에서 팔아도 성공하겠다. 이런 사람이 있는 식당이면 매일 와야지.

그래서 매일 갔다.

인도인들의 거짓말과 사기에 지쳐있던 나는 우다이푸르에 머물며 소니네 음식과 아저씨 덕분에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저씨네 놀러 가 아무것도 안 시키고 눌러앉아 수다를 떨어도 눈치 주는 사람 한 명 없다. 이 아저씨들 인도인 맞나 싶다.


글을 쓰다 보니 우다이푸르에선 참 한 게 없었구나 싶다. 그냥 그랬구나. 우다이푸르에서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늦잠 자고 소니네서 밥 먹기, 낮잠 자고 소니네서 밥 먹기, 팹 아저씨네 주스 사 먹기, 야경 보면서 호스텔 친구들과 맥주 먹기. 단조로웠지만, 지루하지 않은 우다이푸르에서의 5일이었다.


"그게 뭐냐 그럴 거면 여행은 왜 갔냐"


라는 말을 친구에게 들었다. 그게 뭐 어때서? 아무것도 안 함에서 오는 행복은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시원한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지고 맛있는 음식에 웃음 짓는, 야경을 보며 노래 들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쓰레기가 둥둥 떠다닐 정도로 더럽지만 옆에선 빨래를 하고 물놀이를 하는 피촐라. 그가 가진 야경의 아름다움과 소니 아저씨네 닭볶음탕, 팹 아저씨의 주스와 늘어지는 낮잠, 빠질 수 없는 시원한 맥주가 나의 우다이푸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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