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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챱 Jan 23. 2024

영국까기인형 2편 - 나는 집에 갇혀있었다.

무려 이틀이나.

https://brunch.co.kr/@euny2772/5


분노로 가득했던 영국까기인형 1편을 남긴 뒤, 몰아치는 1년 반을 보내고 지금 2024년에 와있다.

위의 글은 그 1편의 링크다.


영국을 '여행'으로 와 카디프, 바스, 런던을 돌아봤던 2016년, 나는 영국의 예찬론자였다.(그렇다. 미쳤었다.)

하지만 외노자로 일하러 이곳에 온 후부터는 무서운 속도로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했고, 영국에서 살고자 한다면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다양한 현실들을 매일 정면으로 맞으며 지내고 있다.


오늘은 그 중 가장 최근에 겪었던, 웃픈 에피소드를 하나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외국에서 살고 싶다면, 뭐 이런 류의 에피소드도 삶에 가끔은, 남기도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집에 갇혀있었다.

지난 2023년 크리스마스 연휴, 바로 며칠전 앓았던 지독한 감기의 여파인건지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계속 배탈까지 더해져, 정말 아무 기운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먹는 족족 배탈이 나, 근처 '오세요' 마트에 죽을 사러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사실 그렇게 심하게 아픈 적이 2년 가까이 지내면서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의 순수한 두뇌는 이곳이 영국이고, 공휴일은 늘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 결과로, 나는 이틀 내내 뭔갈 먹고 나서 배가 또 아파올지 아닐지 가늠하면서, 없는 체력을 짜내 최대한 촉각을 곤두세운 채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당일은 모든 지하철과 기차가 운행을 중단했기 때문에, 첫날은 더더욱 그 어느 곳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음식이 있어도 배가 아파 죽 말고는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고작 사당에서 강남 거리에 있는 마트를 갈 수 없어, 고생길을 사서 걸어야 하다니.


그리고 다행히 27일, 드디어 가게들이 영업을 재개했고 나는 살고자 하는 본능에 의지해 번개같이 마트에 가서 죽을 몇그릇 사왔더랬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긴 했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정말 편하고 등 따숩게 살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이가 없어서 웃기기도 하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도 이정도로 집에 강제로 갇혀있던 적이 없었는데, 크리스마스라는 전국적, 대륙적 명절휴일 덕에 나는 인생에 다시는 내손으로 만들지 않을(꼭.. 죽은 미리 사두자..) 경험을 했다.


하루하루 살면 살수록, '아, 외국에서 산다는 건 그런것도 받아들여야 하는거구나!'하는 여러 띵-한 경험을 많이 얻게 된다. 그렇다고 고작 이 사건 하나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고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이런 황당무계해보이는 에피소드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외국에 나와서 살고 싶다'고 한다면 충분히 겪을 수 있다는 인사이트를 주고 싶었다.


다른 날은 다 아파도, 유럽에 산다면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에는 절대 아프면 안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미리미리 비상식량을 구비해놓는 것의 중요성도 깨닫게 해준 에피소드였다.


외국에서의 삶은, 등가교환이다.

끝.




번외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럽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어왔다. 며칠 내내 앓아본 결과, 집이 그립다기 보다는 언제 나을지, 어떻게 해야 나을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잘하면 죽을 수 있겠다는 본능적 위기감으로 가득찼던 크리스마스였다. 알찼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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