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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기 May 26. 2018

낯선 시간감각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하고 무거웠다. 두세 시간의 괭이질로 근육통이 난 것이다. 필라테스 할 때에도 좀처럼 자극이 없던 허벅지 뒷 근육까지 느닷없이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바깥 날씨는 드물게 깨끗했고, 어서 무언가를 심어야 한다는 조바심을 떨칠 수 없어서 오전에 집을 나섰다.


먼저 원예상에 들러 가지 모종 2개, 방울토마토 모종 3개를 사고, 옥수수와 치커리, 로메인, 근대, 고수 씨앗을 샀다. 어제 산 적환 20일 무, 바질 씨앗도 함께 가져왔다. 요 며칠 텃밭 농사에 관한 두꺼운 책을 뒤적이며 5월 초에 심을 수 있는 작물을 알아보고, 키우기 쉬운 것 위주로 꾸린 계획이었다. 책에서는 작물을 너무 많이 심으면 나중에 수확량을 감당하기 힘드니, 욕심부리지 말고 여러 종의 작물을 조금씩 가꾸라고 했다.


비닐 덮은 밭에 60센티미터 간격으로 모종을 심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밭이 넓어서 달랑 5개의 모종을 심어 놓으니 썰렁했다. 오늘도 옆에서 밭일을 가르쳐 주고 도와준 농장 주인아저씨가 휑뎅그레한 텃밭을 보더니, 내게 청양고추는 안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청양고추는 맵죠...'라며 바보스럽게 얼버무려 답했는데, 아저씨가 청양고추 모종 4개를 심어 보라고 가져다주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가지, 방울토마토, 청양고추


아저씨는 오전에 농장을 관리하고, 오후 2시부터 학원차를 운전하러 간다고 한다. 투잡을 뛰는 셈.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하루 종일 쉬는 나보다 훨씬 더 여유로워 보인다. 내가 서툰 손길로 모종을 몇 개 심는 동안, 아저씨는 슬렁슬렁 농장의 텃밭들 사이를 다니며 상추를 한 무더기 따 내게 가져가라고 안겨 주었다. 그러곤 느긋한 걸음으로 2시 언저리에 농장을 나섰다.

 

텃밭에서 나의 시간은 줄줄 늘어지고, 바짝 조여지고를 제멋대로 한다.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씨앗을 심었지만, 아직 등 뒤에 밭이 길게 남아 있다. 일을 많이 못했는데 하루가 다 가 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스레 핸드폰을 확인하면, 겨우 30여 분 정도 흘렀을 뿐이다. 반대로 일이 너무 금방 끝난 것 같다 느끼면 예상보다 늦은 시간이다. 


살다 보면 이렇게 시간감각이 평소와 다를 때가 간혹 생기는 것 같다. 4년 전 영국 농장에서 지낼 때도 그랬다. 영국은 일과 중 한 두 번 티타임을 갖는데, 노동시간이 엄청난 한국에서 온 나는 당연한 노동권처럼 지켜지는 티타임에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티타임이라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며, 밭에서 일할 때 시계도 제대로 못 볼 텐데 어떻게 귀신같이 차 마실 시간을 아는 건지, 신기했다. 티타임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그들의 시간이 나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갔던 걸까.



3시 반쯤 차 한 잔씩 들고 둘러앉았던 곳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야속하게도 더 느릿느릿 흐른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나와 동생들은 하루 종일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고, 일주일 내내 주말을 기다렸다. 

그 시간의 길이는 하루가 24시간, 일주일은 7일로 지금과 똑같지만, 어린 나에게는 무척 아득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우주 어딘가에서 해가 쨍쨍하고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여름날, 어린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 길고 막막한 하루를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지금 텃밭에서 겪는 시간은, 무언가를 기다려서가 아니라 새로운 공간에서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에 낯설게 흐르는 것 같다. 텃밭에서 몸으로 하는 일은 가슴 설레고 재밌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특별히 애써야 한다. 작은 일에도 긴장해서 시간까지 제대로 통제하기엔 무리인가 보다.

영국 농장에서는 새로운 공간과 일에 더불어 새로운 언어까지 밀려들었다. 시험을 위한 영어만 알던 나는 당연히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이 북적북적 모여서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내게 아주 더디고 어색하게 흘렀고, 상대방이 내 말을 기다리는 시간은 내가 머릿속에서 최선을 다해 단어를 정리하는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기다리는 시간과 적응하는 시간. 이 시간들을 살 때, 우리는 무엇인가 누군가가 결핍되어 기다려야 하고, 기존의 경험이 리셋된 상태에서 어린아이처럼 배워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약할 때,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르는 것 아닐까. 



필연처럼, 기다리던 결말은 언젠가 오고, 모든 게 익숙해져 다시 일상의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선 시간을 기꺼이 함께해 준 누군가는 그냥 흘러가지 않고 쌓여 지금의 우리를 지탱해 준다. 서툰 영어로 문장을 끝맺을 때까지 그 늘어진 시간을 기다려준 많은 이들의 따뜻한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텃밭의 농장 주인아저씨도 마찬가지다. 어제오늘 옆에서 나의 늘어진 시간을 기다린다. 내 서툰 동작에 별 말없이 일손을 더하고, 가만히 지켜보다 내게 필요한 철사 핀이나 청양고추 모종을 건넬 뿐이다.



비닐을 덮지 않은 밭 전체에 여러 종류의 씨앗을 정성껏 뿌렸다. 그제야 허리를 펴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텃밭을 찬찬히 둘러본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처럼 불안하지만 제 힘으로 서 있는 작은 가지와 토마토, 청양고추.  

지나치게 꼼꼼히 씨앗을 심었는데, 시치미 떼듯 아무 표 나지 않는 밭. 

이제부터 내가 기다려야 하는 존재들이 앞에 가만히 펼쳐져 있다. 씨앗이 싹트고, 모종이 햇볕과 바람을 겪으며 자라나는 일은 나의 기대와 조바심보다 훨씬 더딜 것이다. 이 시간에 맞춰 나도 시간을 줄줄 늘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러면 나와 같이 약하고 작은 누군가의 낯선 시간을 함께할 여유가 내게도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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