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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드캣 Aug 04. 2020

어색한 대화

전에 만화로 어색한 대화에 대해서 그렸었다.

생각난 일이란 (다음 화를 그리려다가 대화를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텍스트로) 바로 이것이다.

영어책을 보다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앞뒤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어색한 대화.


위는 가끔 음성을 틀어놓고 호호랑 신나게 웃어젖히게 만드는 무료 영어회화 콘텐츠다.

아마 캡처 화면만 봐도 어디에서 구했는지 바로 알아보실 분도 많을 거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 곳이기도 하고 유명한 회사의 콘텐츠를 받아서 올리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이걸 보고 깔깔대며 웃게 되는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도무지 이 대화가 일어나야 하는 이유 또는 상황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대화를 습득한들 일상에서 쓸 일이 없어서 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 가끔 매일 올라오는 대화 중에서 엄마와 아들이 영어로 하는 대화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로 굳이 연습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물론 간혹 자녀분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부모님들도 있다. 호호가 고깃집에서 어린 자녀에게 broken English로 대화하는 부모님을 목격하고는 왜 저러냐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표 영어가 시중에 많고 이를 실제로 행하고 계신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호호와 이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해왔지만 조심스럽게 말하면 엄마표 영어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과 완벽하지 않은 영어 문장으로 대화하는 것은 아이의 영어 교육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영어가 모국어가 될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말을 모국어로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상태에서 영어를 제2 외국어로 배워야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문장으로 무조건 영어로 대화하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같은 이유로 미드로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한계가 있기도 하고.

다시 상단의 대화에 대해 말하자면, 점심 먹자는 대화로 미루어 보아 직장 동료 간의 대화 같다고 유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맨 첫 문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쓸모없다.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메뉴를 고르는 거라면 저렇게 오래도록 샐러드에 대해 길게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또한, 대개 점심 메뉴로 샐러드만 먹으러 식당에 가는 경우는 흔치도 않다. 남자가 말한 시판 샐러드(pre-prepared salads or premade salads)를 회사에 사들고 와서 점심시간에 먹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봐도 나머지 대화는 이상하다. 부적절한 문법 요소와 단어의 선정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비약이 문제가 되고, 또한 그로 인해 대화가 이리저리 널뛰며 이어지지 않기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보기에 이 학습자료는 영어를 학습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보다는 "뭐? 다시 재생해봐!" 이러면서 재미를 주는 요소일 뿐이다.

이 대화에서는 단어 선정이 완전히 잘못된 것, 그리고 문법적으로 이상하게 관사가 쓰여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을 빼고는 문법적으로는 괜찮다. 그렇지만 논리적인 면에서 보면 "말이 되지 않는" 내용 투성이에 굳이 왜 이런 것을 익혀야 하는지 궁금한 경우도 많이 있다.

호호 교수가 다시 위의 대화를 정리해 "말이 되게" 고쳐서 적었다.



A: I’m craving a salad today. Would you care to join me for lunch at Salad Garden?

B: Sure! I could really go for a Caeser salad.

A: You’re in luck! Salad Garden has Caeser salads. As a matter of fact, I ate one there just last week. It wasn’t bad at all.

B: Great! I’d also settle for a salmon salad if they have one. In fact, a salmon salad might be a better choice for me today. I’m trying to eat right and watch my weight.

A: Well, they have all kinds of ingredients and dressings at Salad Garden, including low-calorie dressings. You can build your own salad at their salad bar.

B: That sounds lovely. Shall we head there now?

A: Yes. Let’s go!


나도 영어책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를 했고 출판사 근무 전에도 여러 콘텐츠 작업하는 일에 프리랜서로 업무를 했었지만, 이상하게 생각된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 한국인이 영어로 글을 적고 원고를 쓴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영어로 글을 쓰면서 자기가 전혀 실수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나도 영어로 원고를 쓸 때 혹은 영어 문법책의 예문 자료를 준비할 때 내가 직접 예문을 써야 했다. 건네주면서 편집부에 원어민 검수를 요청했는데 출판사에서 실제로 검수를 해서 출간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혹은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내가 영어권 원어민보다 영어가 더 완벽함"이라는 의견들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나는 영어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하나도 없고 내가 영어를 최고로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상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나만 믿으라고 한다거나 다른 경쟁 학습법을 무시하고 까내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학습하면서 혹은 강의하면서 이 방법대로만 하면 안 될 것 없다고도 한다. 물론 자신감은 좋다. 특히 영어를 말하는 데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영어라는 언어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기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담 없이 영어를 말하기 시작하게 되고 그래서 이런 풍조가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완벽하다는 부분과 실제로 그 언어를 나고 자라며 사용해 온 사람들이 느끼는 적절함과 미묘한 뉘앙스는 알다가도 모를 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어는 언어이기에 어떤 언어라도 그러는 것처럼 계속 변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에 맞게 달라진다. 특히나 새로운 기술과 정보들이 생겨나면서 용어들이나 표현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표현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20년 전에 습득한 지식이 이대로 완벽하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하면 문제가 된다. 매일 단련하고 익히고 공부할 수밖에 없는 언어. 매일 쓰고 읽고 보고 듣고 할 수밖에는 없다. 언어의 특성상 자신이 그 언어에 담긴 모든 것이 죽은 지식이라 전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고 늘 그 언어의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수영을 하며 즐기고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옳다.

호호 교수는 늘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이상한 영어 또는 콩글리쉬를 보면, 특히나 그것이 어딘가에 조각되어 있다거나 공식적인 구조물로 만들어져서 수정하기 힘든 경우에는 "왜 원어민 영어권 사람에게 확인을 받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책이든 뭐든 한국말로 된 것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면 절대로 한국 사람에게 문의를 해서 교정을 요청할 거라고도 한다. 이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된다.

저 대화도 두 명의 남녀 영어권 원어민 스피커가 읽어서 녹음한다. 호호 교수는 또 저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런다. 아니, 분명히 이상하고 잘못된 것인데 왜 저걸 그냥 읽고 있을 수 있냐고 그런다. 나는 영어책 출판사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서, 녹음실에 성우를 불러다가 특정한 시간만큼 녹음하는 것이기에 다 짜인 스크립트를 즉석에서 수정하는 것은 또 불가능하고 교정이 여러 번 들어가면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다니며 교정하고 고쳐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불가능했을 거라고 설명했다. 호호는 그 말을 듣더니 참 저 성우들은 저거 늘 녹음하면서 이상한 기분 들 거라고 한 마디 한다.  

우리도 작년 정도에 대화를 "호호네 브런치"에 집어넣기도 했었다. 관리하기도 힘들고 우리는 두 명이 만들고 있어서 작업량이 말도 못 하게 많아서 중단했다.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다시 한번 이미 짜인 대화를 이용한 영어 교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 대화가 일어나게 될 상황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영어 대화는 앞으로는 우리가 그리는 영어 만화 형태로만 제공하기로 했다. 이마저도 계속 만들고 있지는 못하지만 항상 해야 할 일로 남아 있다.

우리는 두 명이 영어책을 만든다. 나도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중학교 1학년 때 A, B, C부터 배우던 공교육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한 사람이다. 영어를 말하거나 쓰는데 불편함은 없지만 내 영어가 누구보다 완벽하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야 할 필요도 없고. 다만 잘못된 정보를 거짓으로 포장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부한다. 나도 우리 학습지를 만들면서 운동하듯 쉐도우 리딩 연습을 해주어야 하기에 가능하면 매일 연습하려고 한다. 늘 이야기 하지만 언어는 몸이 익어야 하는 것이라 안 쓰면 퇴화한다. 자꾸 자극을 주고 연습해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자료로 연습하는 것은 잘못된 운동 루틴이나 자세로 연습하는 것만큼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낄낄대고 웃다가도 좀 씁쓸해지고는 한다. "진짜" 영어, "리얼" 영어, 이것만 하면 "100일 만에 원어민"과 같은 홍보 어구의 홍수 속에서 우리도 허우적댄다. 늘 진심을 담아 정말 말이 되는 영어책, 영어를 오래 가르쳐 왔고 지금도 늘 영어를 사용하는 나도 사용하면서 도움을 받는 영어 스피킹 책과 자료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직접 눈에 띄고 자본을 쏟아부어 더 많이 사람들 손에 잡히는 저런 잘못된 자료들이 당연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만연한 우리나라 영어교육 시장이다. 힘들어도 정말 미친 사람들처럼 일만 하며 버티고 있고, 스스로 영어 공부하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에게는 저런 자료들과 우리가 만드는 자료는 그저 똑같은 것으로 비칠 것이다. "너네가 뭔데?" 또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등의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호호 교수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자기는 별 것 없고 아주 명확하게, 북미 표준액센트로 말하고 또 제대로 된 북미 영어를 구사하며 논리적으로 어긋난 글을 쓰지 않을 뿐이다라고. 우리는 그동안 영어강의를 해오며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없애고 꼭 필요하고 정말 도움이 되는 자가학습 자료를 만들어내고자 시작했다. 늘 이런 부분에 대해 의논하고 이야기 나누며 머릿속에서 구상한 부분들을 직접 실현해 내고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 엄청나게 근사한 예술 작품도 아니고 끽해야 영어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실용적인 것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의 손에 들려 쓸모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둘이 일해 힘들지만 손이 부족한 것을 빼고는 매우 효율적이며 실용적이다. 녹음하다가도 호호 교수가 교정을 볼 수도 있고 나는 옆에서 바로 내용을 수정하고 고쳐 책의 내용이나 이미지 카드나 동영상 자료 등을 교정할 수 있다. 수정할 내용을 적어서 디자인팀으로 영상 제작팀으로 보내 교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부분이 말이 되는 책과 자료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워낙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얼굴을 내보이고 파워포인트 띄워가며 밝은 목소리로 한 가지 표현에 대해 10분 강의를 만들지 않는다. 영어 강의의 한계는 오랜 시간 동안 강의를 해오며 직접 몸으로 겪었다. 영원히 영어를 말하지 못하고 학원으로 사교육으로 전전하게끔 하는 듯한 영어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지만 흔히 말하는 bullshit(험한 말 죄송)을 팔고 연예인을 동원해 우리 책을 홍보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진다. 그래서 출판사를 그만두기도 했지만. 정말 진심을 담으면 언젠가는 우리의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다다 떠들었다. 만화로 그릴 걸 그랬나. 할 일이 많다 보니 만화를 그려야 하는데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호호는 나처럼 일 많이 하고 돈 못 버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한다. 그런데도 말도 안 되게 긍정적이라며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상한 사람인 것은 맞다. 그런데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은 아마 우리가 만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 일거다. 또 버티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열심히 살아온 만큼 보상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고. 그리고 또 보상이 없으면 어떠하리. 적어도 거짓된 모습으로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흉내 내며 돈을 벌고 있지는 않으니 그걸로 됐다. 일단은 근근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있으니 지금은 이걸로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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