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뒤 영국으로 유학을 갈 도은이
국내에서 수능을 보고 원하는 학교에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영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찾아온 학생이 있다.
도은이는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학교에 이미 합격을 했지만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신입생 그리고 달콤한 대학생활이라는 유혹을 뿌리쳤다.
부모님은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갔으면 하셨는데
본인은 한국에서 승부를 보고 싶었단다.
그렇게 한 달 전부터 나에게 생물학, 영국 교육과정이니까 Biology를 듣게 되었다.
국내 교육과정을 오래 배우고 갑자기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겪는
첫 번째 어려움은 바로 용어(key terms)의 매칭이 안 되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용어가 영어로 나왔을 때,
그 단어들을 미리 알고 있지 않으면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다.
나는 그런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배운 내용과 용어를 영어로 바꿔서 머릿속에 넣는 작업을 도와준다.
물론 나도 처음에 원서를 보며 수업을 준비하며 무수히 많은 밤을 지새웠고
봐도 봐도 너무 많은 정보와 집중이 되지 않아 같은 페이지를 보고 또 보고 하던 지난날들이 스쳐간다.
너는 나처럼 고생하지 말라고 단시간에 정보 전달을 잘 하기 위해
이미 다 아는 내용도 수업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들어간다.
지난주에는 도은이랑 멘델의 유전학(Mendelian genetics) 진도를 들어갔다.
문과 학생이었던 터라 깊은 생물학 내용은 낯설고 어렵기만 할 텐데
주 1회 수업 외에도 혼자서 매일 생물학 공부를 하는지 질문하는 메시지를 자주 보내온다.
도은: 유전 어렵네요, 알파벳으로 테이블 만들어서 off spring (자손) 보는 거는 알겠는데
그걸 염색체 그림에다가 그려보라고 하면 못하겠어요~
나: 응 그거 이번 주에 연습하자. 미리 알려줬으니까 문제 준비할 시간 있겠다.
도은: 넵
(며칠 뒤)
도은: 드디어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읊어보아라~
도은: 딱히 하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닌 거 아시지 않습니까 ㅋㅋ
그냥 전체적으로 계몽되었어요.
나: 아오 ㅋㅋ 나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ㅋㅋ
그럼 내일은 문제를 좀 풀면서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을 해보자.
도은: 네 그래야 될 것 같아요 ㅋㅋ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매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예뻐서
수업 시간도 십분 이십 분씩 연장해서 더 봐주곤 한다.
피곤하고 바쁘고 지치는 날에도
내가 내용을 설명해주면 이해를 하면서 정말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리액션을 준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안다.
도은이는 나의 감기는 눈과 피곤하고 부은 얼굴에도 최선을 다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을
나는 도은이의 표정과 행동에서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말이다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설명하고 A로 설명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면
같은 내용을 B로 돌려서 설명해주고, 또 그것도 어렵다면 같은 내용을 C로 설명해주는 것이
내가 쓰는 방법이다. 안되면 돌아가면 되니까.
내 학생이 이해를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비유 또는 방법을 써서라도 노력을 하고 싶은 마음인 거다.
왜냐면, 개념 하나가 막히면 그 뒤의 내용들이 재미가 없고 힘들어지기 때문에 역치를 낮추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이 내 과목에서 흥미를 느껴서 공부가 재미있어진다면 다른 과목도 같이 상승효과를 낼 수 있고,
더 나아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부활의 김태원이 방송에서 그랬다.
'초등학교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이 저한테 심부름 한 번 만 시켜줬어도 제 인생이 바뀌었을 거예요~'
시간은 곧 돈인 현대인의 사회에서 학생이나 학생 부모님은
나를 믿고 자신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의 인생을 맡겨준 것이다.
믿고 찾아와 준 그리고 전적으로 지지해주며 내 말을 잘 따라주는 이들에게
수업료보다 더 값진 것으로 되돌려주고 싶다.
도은이를 보니 똑똑하고 의지도 있고,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는 다른 나의 수업 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는데 생물학에도 재미를 느끼니
의학에 컴퓨터 공학을 접목하는 일을 하면 어떨지 권해보았다.
그랬더니 자기도 그런 일 해보고 싶단다.
이 학생과 수업하는 마지막 날까지 흥미와 호기심을 끌어내서 온전히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영국 생활이 활기차기를 바란다.
예전에 이탈리아에 내가 요리를 처음 배우러 가던 그때처럼
한국 생활이 너무나도 힘들고 지쳐서 눈물과 설움에 복받쳐 떠났던 그런 마음은 아니었으면 한다.
김태원의 그 아쉬움을 내 학생은 느끼지 않았으면
그리고 나로 인해 인생의 살아가는 힘을 얻었으면 한다.
그런 내일의 수업을 위해 오늘은 체력을 아낀다.
학생들이 참 예쁘다.
나는 선생님이라는 내 직업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