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은 아이의 모습과 노인의 모습이 교차되곤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아마도 영화였겠지. 후유증이라는 말인데, 이것조차도 가십성으로 소비하며 완전한 희생자로 만들었다. 이 길고긴 사태에서 누구만 고통을 감당했나. 나 홀로 다 짊어졌다. 보호막이 없으니까. 때려도 페이백이 없을테니까.
비겁한 킬링디어였다.
좋아하는 음악 영화 책 작가 감독, 입는 옷부터 음식 취향, 습관, 다니던 학교 학과, 내가 쌓아온 것들 모두 도축하듯 여러명에게 나누어 전체 배분했다, 국가가. 나는 그 여러명이었다. 그 모든 게 한 사람이 홀로 이뤄온 노력의 중간물이었고, 결과는 공짜로 그들이 나눠가졌다.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합당하다.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을 전체주의적으로 배분한 것이니까. 그러나, 국가는 이것을 시기쯤으로 포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