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쌓아 올린 래포(Rapport)

코로나 19로 실종된 대면 수업. 하지만 소통은 끊이지 않는다.

by 곰실곰실

오늘도 16명 중 10명의 아이들은 전화를 받고서야 일어났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의 하루는 고객님들을 향한 모닝콜로 시작된다. 온라인 수업 초기에는 아이들이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못 이길 정도로 속상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열몇 개의 벽에다가 나 혼자서 공을 던지고, 그 공이 매번 받아주는 사람 없이 되돌아와 날 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코로나 19의 창궐과 함께 뼈저리게 느꼈더랬다.


하지만 전화가 또 다른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코로나 19 덕에 깨달았다. 전화 통화가 쉬워졌다. 예전에는 학교의 대면 수업을 통해 다수의 아이들과 주로 짧게 대화를 주고받았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더라도 아이들은 주변의 이목을 신경 쓴다고 담임에게 쉽게 상담을 신청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다 보니 퇴근한 후에 걸려오는 아이들 및 학부모들의 전화는 교사에게 그저 부담이었고, 학생들과 맞부딪히며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회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화가 아니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고요하다. 익숙한 시끄러움이 사라진 학교에서 담임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찾는다. 처음에는 익숙지 못해 부담스럽던 전화통화가 어느 순간 학생 개개인과 나를 이어주는 소통의 장으로 변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교사와 학생 간의 공감 형성을 래포(Rapport)라고 한다. 원래 얼굴을 마주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며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쌓아 올리던 래포가 핸드폰을 통해, 학생을 향해 거는 전화의 신호음 하나하나에 쌓여가는 기분이다. 아이들은 교사와 1:1로 전화통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무한한 상담의 기회를 갖게 된다. 가정사,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일상,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양치를 안 했다고 쫑알거리는 목소리를 통해 교사는 아이들을 더 밀접하게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4년 차 중3 담임인 나는 전화로만 마주하고 있는 아이들이 여전히 너무나도 귀엽고 소중하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상담, 수업, 그리고 행사 진행까지, 힘든 건 학생이나 교사나 매한가지인데도 잘 따라와 주어서 고맙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면 괜한 부끄러움에 털어놓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전화를 통해 시시콜콜 늘어놓아 주어서 고맙다. 가끔 단톡 방에서 출석을 독촉하는 선생님의 편에 서주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어서 고맙다. 열여섯 명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다가 갑자기 밀려오는 고마움에 글을 적는다. 많이 만나지 않아서 기록할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술술 적히는 한 명 한 명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 신기할 따름이다. 전화를 통해 우리는 올해 참으로도 많은 것을 쌓아 올렸고, 서로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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