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소설)
천하에 두려운 거 하나 없는 거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 끄트머리에 위치한 낮은 언덕 아래, 햇살 하나 들지 않는 깊고 좁은 동굴 한가운데 난쟁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중 한 난쟁이가 모여 있는 난쟁이들을 향해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설명이 끝나자, 한 난쟁이가 회의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외지에서 온 난쟁이는 한쪽 입 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하지만, 다른 난쟁이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거인의 뒤통수를 볼 수도 없는데요. 어떻게 그들의 약점인 뒤통수를 건드릴 수 있나요?”
가장 작은 거인도 가장 큰 난쟁이보다 다섯 배 이상 컸다. 난쟁이들이 아무리 높이 뛰어오른다고 한들 거인들의 약점인 뒤통수를 건드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들이 스스로 고개를 숙여서 우리에게 뒤통수를 보이도록 해야죠.”
외지에서 온 난쟁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른 난쟁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따르겠습니다.”
난쟁이들은 이제 방법이 없었다. 외지에서 온 난쟁이를 믿지 않으면 모두 죽을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든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
“이게 뭐야?”
“반짝반짝 참 예쁘지?”
어린 거인 하나가 반짝이는 물건 하나를 손에 들고는 햇살에 비취며 몰려든 이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났어?”
“응. 저기 저 낮은 언덕 근처에서 발견했어. 예쁘지.”
“그러게 진짜 예뻐. 반짝반짝 눈이 부셔. 나도 가봐야지.”
“나도. 나도!”
수십 명의 어린 거인들이 우르르 낮은 언덕으로 몰려갔다. 그 모습에 동굴 밖에서 살피던 난쟁이 하나가 동굴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난쟁이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옵니다. 다들 옵니다. 어서, 어서, 밖으로 던지세요!”
신호에 맞추어 나타난 난쟁이들이 동굴 밖으로 반짝이는 물건들을 재빠르게 던졌다. 그리고 거인들이 오기 전에 동굴 안으로 후다닥 몸을 숨겼다. 찰나의 사이 작은 거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작고 반짝이는 물건을 홀린 듯이 줍기 시작했다.
“와! 진짜 많다.”
“가져가자.”
“그래. 다 가져가자. 가서 어른들께도 나눠 드리자.”
“좋아. 좋아.”
낮은 언덕 주위에 뿌려진 물건들은 어린 거인들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룰루랄라 사라지는 어린 거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가 외지에서 온 난쟁이에게 물었다.
“정말 이거면 되는 겁니까?”
“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걸어와 우리 난쟁이들 앞에 고개를 숙일 겁니다. 그때부터가 진짜 중요합니다.”
***
정확히 1년 하고도 한 달 후, 감히 올려다볼 엄두도 못 냈던 거인들이 낮은 언덕 주위로 몰려와서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두 다리를 두 팔로 꽉 껴안고는 꼭 쥐며느리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는 꼼짝을 않는다. 평원 위를 날아다니던 독수리들만이 갑자기 생긴 수백, 수천 개의 돌덩이에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다.
“진짜 대단한 위력이군요.”
“모든 난쟁이에게 전하세요. 거인들을 잘 살피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것 같으면 반짝이는 물건들을 그들의 눈앞에 뿌려주라고요.”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관리해야 하는 건가요? 우리는 거인들에 비해 인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곧 있으면, 그들 스스로 우리 뜻대로 움직일 테니까요.”
“그들 스스로요?”
“자기들끼리 감시라고 해야 하나요?”
외지에서 온 난쟁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거인들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얼마 후, 거인들은 난쟁이의 반짝이는 물건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고, 움직이라고 하면 움직였다. 심지어 평원을 떠나라고 하면 떠났고,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까지 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 하늘 같았던 거인들을 우리 발아래에 두다니요.”
“네. 정말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그런데 저는 좀 두렵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보고에 의하면, 점점 반짝이는 물건에 흥미를 갖지 않는 거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흥미를 잃은 거인들이 벌떡 일어나서 우리를 짓누를까 두렵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숙이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약점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일어서려는 거인들이 보이면 뒤통수를 건드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뒤통수를 건드리기만 할 수 있지, 절대 부수지는 못합니다.”
“그렇죠. 우리는 거인들을 부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두렵게 만들 수는 있죠. 그들은 지금까지 두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누가 감히 거인의 뒤통수를 건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살짝 눌러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거인들은 스스로 만든 두려움에 갇혀서 절대 고개를 들지 않을 것입니다. 반짝이는 물건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두려움. 이것만 있으면, 거인들은 우리 발밑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휴우, 그렇군요. 이제 좀 마음이 놓입니다.”
***
“큰일 났습니다.”
“왜 이리 호들갑을 떠십니까?”
예전 거인들이 거닐던 넓은 평원 한가운데 지어진 높고 화려한 성 안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던 외지에서 온 난쟁이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난쟁이에게 물었다. 가파르게 숨을 몰아쉬던 난쟁이가 외쳤다.
“한 거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까?”
외지에서 온 난쟁이는 태연히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거인이 일어났단 말입니다. 반짝이는 보석도 뒤통수의 두려움도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어떻게 걱정을 안 한단 말입니까? 일어난 거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거인들과 자신이 살았던 터전을 보고는 경악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답니다. 곧 이곳으로 달려올지도 모릅니다.”
“달려온다고 한 들 그 거인 하나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그들이 발로 짓이기면 무기력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여린 난쟁이일 뿐입니다. 잊으셨습니까?”
말을 전하던 난쟁이는 어깨를 감싸고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쯧쯧, 두고 보십시오. 일어난 거인은 절대 성 근처도 오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그들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리 태평하십니까?”
“네. 우리는 못 막지요. 하지만, 그들은 막겠지요.”
“그들이요?”
“반짝이는 보석과 뒤통수의 두려움을 모르는 거인은 단 한 명뿐입니다. 다른 거인들은 우리의 손아귀에 있음을 잊으셨습니까?”
“아!”
난쟁이의 예언대로 일어난 거인은 난쟁이들의 성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다른 거인들에 붙들려, 맞고, 찢기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지금 다들 뭐 하는 거야?!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서 뭐 하는 거냐고?! 고개를 들어, 어서 고개를 들라고!”
그러나 그 어떤 거인도 일어난 거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난 거인의 의미 없는 메아리만 낮은 언덕 아래로 흩어져갔다. 그 이후로, 간혹 자리를 털고 일어난 거인은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조용히 자신이 살던 평원을 떠나갔다. 자신들의 터전을 장악한 난쟁이의 성을 부술 생각도 안 했고, 쥐며느리처럼 웅크리고 있는 다른 거인들을 일으켜 세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거인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가장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역시, 당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우리 난쟁이는 이제 아무런 두려움도 없습니다. 이제 거인 따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하하.”
세상을 다 얻은 난쟁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본 외지에서 온 난쟁이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그렇습니까?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고요? 그럼 저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겠군요.”
“네? 무슨 말입니까? 이제 완벽히 우리의 세상이 됐는데 떠나다니요.”
“모든 것은 기울면 차오르는 법이지요.”
외지에서 온 난쟁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황금의 성을 떠났지만, 다른 난쟁이들은 그를 잡지 않았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거인들을 완벽하게 발아래 두고 있었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 외지에서 온 난쟁이는 필요 없었다. 반짝이는 물건과 거인의 뒤통수를 건드릴 약간의 힘만 있다면, 세상이 뒤집어질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난쟁이들이 온종일 화려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이, 어린 거인 하나가 부스스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미없어. 반짝이는 물건을 보는 것도 재미없고, 내 뒤통수를 건드리는 저 간지러운 손도 다 귀찮아.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 그만큼 숙이고 있었으면 됐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어린 거인은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힘차게 포효했다. 포효 소리에 많은 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