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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Oct 04. 2024

지구도 살고 싶다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문득 나무 하나를 바라보는데 잎사귀 하나가 병이 든 것처럼 비쩍 말라있었다.

"다른 잎은 멀쩡한데, 왜 저 잎만 상했을까? 다른 잎사귀까지 병들기 전에 빨리 뜯어버려야겠는데."

혼자 쫑알거리며 걸어가는데, 또 다른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나무의 잎사귀는 대부분이 상해있었다.

"이런, 이 나무는 곧 죽겠어. 아예 나무 자체를 잘라버려야겠는데."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최근에 본 기사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강도, 살인, 방화, 폭염, 태풍, 지진, 화산 폭발, 전쟁 등




지구는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버틸 만큼 버틴 것 같아."

나는 흠칫 놀라서 물었다.

"우리를 사랑하잖아요."

지구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사랑하지. 내 피와 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하는 너희지만, 그래도 사랑하지. 하지만, 나도 살아야지."

나는 최근 뉴스에 자주 나오는 지진과 태풍, 화산 폭발 등이 떠올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도 아프잖아요. 살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를 털어내야겠어요? 그냥 예전처럼 당신에게 해를 주는 상한 잎들만 뜯어내면 안 되나요?"

지구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너희 몸의 세포를 생각해 봐. 모든 세포가 이롭지 않지. 하지만, 이롭지 않은 세포는 이로운 세포한테 잡아먹혀. 그래서 너희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이롭지 않은 세포들이 커지면 어떻게 되지?"

나는 지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암세포를 말하는군요."

"그래. 사라지지 않는 암세포는 덩어리를 이루고 너희를 잡아먹지. 너희는 그 세포를 어떻게 하지?"

"잘라내죠."

"어떻게?"

"수술대에 올라서 살을 찢고 뼈를 드러낸 후에 없애요."

"왜 그렇게 하지? 네 살를 찢고 뼈를 드러내는 일이데?"

나는 짧은 침묵 후에 대답했다.

"그래야 사니까요."

지구는 내 말에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나도 그래. 나도 살고 싶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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