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공유
그와는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
어플을 통해 모집하는 모임은 가입하면 꼭 사진을 포함한 자기소개를 올리라는 공지가 있곤 하다. 개인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차피 오프라인으로 만날 거 왜 굳이 미리 사진이 필요한가 싶다.
아무튼 그 모임도 사진과 함께 자기소개를 올려야 하는 게시판이 있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가입했던 나머지 쉽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회원들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보통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올리지 않나요? 그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급 자기소개를 올리기 위해 무척이나 대충 찍은 듯한 사진을 무심한 멘트들과 함께 업로드했다.
초인 같은 모습이 당황스러웠고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모임 시간을 꽤 지나서야 도착한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자기소개 사진 덕분이긴 했다.
멀리서 성큼성큼 긴 머리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자연인 같은 모습이 신기하다는 게 그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복잡하고 힘겨운 세상만사에 초월한 듯한 모습, 태도, 말투.
가지고 온 책은 더 인상 깊었는데 내가 살면서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분야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가 읽는 책에 관심이 갔다. 똑똑해 보였다. 지식인 같았다.
그리고 몇 번의 추가적인 모임.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는 전혀 받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본인은 나에게 관심을 엄청 어필했다고 한다. 첫눈에(?) 좋아했고 나에게 그 공세가 통하지 않아 포기하려 했었다는 그가 쓴 글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은 아주 나중 일이다.
모임 중에 전화번호는 내가 먼저 물어봤다.
자주 늦길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의 지각하는 습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어쩌다 보니 둘이서만 만나서 읽은 책을 공유했던 날이었다.
여름이었고, 반팔을 입은 그가 대화 도중 양팔을 들어 올려 뒤통수 뒤로 깍지를 꼈다. 반팔이 흘러내렸고 팔근육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사랑에 빠졌다. 그 모습이 그냥 섹시해 보였다. 쌉쌀한 맥주가 있었고 종로의 분위기가 그랬다.
가끔 그의 친구들이 어떤 모습에 반했냐고 물을 때마다 여름의 팔근육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정말 날 이상하게 바라본다. 사실인 걸 어떡하나. 다음날부터는 적극적인 나의 애정 공세가 펼쳐졌고 다시 만났고, 그다음 날도 계속 만났다.
비슷한 모습도 있었지만, 다른 점이 더 많았고 MBTI가 유행하자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MBTI가 참 고맙다. 왜 저러지 싶었던 모습들이 내 기준에서 나오는 편협한 판단임을 알게 되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이해하고 아 그래, 그럴 수 있지로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가 여전히 잘 만나고 있다.
우리의 MBTI는 nf와 st로 극과 극이지만 그래서 더 재밌을 때가 많다. 서로의 성향 역시 한몫하기도 했다. 둘 다 매사에 그러려니 하는 성격이라 큰 트러블 없이 무난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독서모임을 같이 하고 있다. 인원이 확 줄어 만나는 사람만 만나 거진 친목 모임으로 바뀌었지만 한 달에 한 번쯤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책 이야기를 한다.
그가 읽은 책 이야기가 여전히 재밌다. 서로 무슨 책 읽는지는 알지만 내용은 모임에서만 말한다. 그가 모임에서 말하지 못한 더 진한 이야기들을 집에 와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묘미다. 신나서 얘기하는 그를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그가 신날 때 나도 신난다. 그도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내 책 취향을 신기해한다.(ㅋㅋ)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건 관계에 있어서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관계를 시작할 때도, 유지할 때도 같은 취미가 있어야 오락이 되고 위안이 된다.
취미가 없었다가 그로 인해 새로 생긴 취미도 있는데, 풋살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