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뭐, 시집은 잘 가겠네?
승무원을 바라보는 이중 감정
에미레이트로부터 골든콜을 받고, 입사 결정을 한 연후에, 다니던 직장에 퇴사 통보를 하고 인사부장을 만나 면담을 했다.
"아니, 도대체 왜 나가려고 하는 건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인사부장님 표정이 묘해진다. 여러 협의할 부분을 짚고 난 뒤에 원래 그쪽에 꿈이 있었던 거냐며 이것저것 캐묻는다.
"그거 뭐, 시집은 잘 가겠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난다는데 시집은 잘 가겠다라니. 덕담으로 들어야 하는 걸까. 그냥 배시시 웃으며 '아, 네네.' 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영 뒷맛이 씁쓸하다. 시집가려고 승무원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음, 어쩌면 많은 기성세대들은 이 직업을 그리 생각하는 듯하다.
하늘 위 식모/비행기 웨이트리스
승무원에 대한 이중 감정은 언제나 극명하다. 한 번쯤 들었던 막말에 가까운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더욱 적나라하다.
얼굴 반반하고 몸매 좋고 그래 놓고 하는 일은 끽해야 하늘 위 식모, 비행기가 무대인 식당 아줌마 수준 아닌가, 밖에 돌아다니니 씀씀이 크고 놀기 좋아하고, 외국 다니니 개방적이지 않나, 그 일하고 돈 좀 버니 자존감 세고 콧대 높고, 그래 놓고 어쨌든 돈 많은 남자 하나 물면 시집가서 일 그만두고 싶어 하는. 그 와중에 외항사는 뭐 얼굴 보고 뽑는 것도 아니니 영어나 좀 하지 외모는 그저 그런 수준인 것 같고..
왜일까?
실제 일을 하면서는, 사실상 대부분 한국 손님들이 아닌 전 세계 손님들을 마주할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일반화하려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밝혀 두겠다. 내가 만난 손님 중 한국 손님들은 5%도 안 됐을 것이니 말이다. 부정적인 경험은 상대적으로 꽤나 많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괴롭히기 위해 과도한 요구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어떻게든 트집 잡으려는 사람, 면전에 대고 외항사 서비스는 이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국내 항공사를 탈 수밖에 없는 거라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릎 꿇고 앉아 종처럼 서비스해주기를 바라는 성격의 것이었다. 잠재적으로 직업이나 계급의 귀천이 있는 국가의 손님들, 승무원 직업에 대한 판타지랄까, 편견이 강한 나라에서 그런 성향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언젠가 어느 아시아계 항공사에서 승무원 선발을 마치 미인대회에 가깝게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당신의 끼, 재능, 섹시함 이런 것들을 어필하라는, 지원자들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인기투표를 하는 그런 과정이었다. 자본의 논리란 어쩌면 그런 것이겠지 싶다가도 그렇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바라볼 때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이 주제로 동료 크루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전통적인 승무원에 대한 편견에 가까운 인상이 긴 시간 누적되어 온 것은 오래된 역사이나, 어떤 곳은 그 단계를 넘어선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여전히 여러 항공사들은 승무원에 대한 그런 이미지를 내세우고 이런 식으로 공고히 하려고 하는 시도로 느껴져 더욱 안타까웠다.
어느 날 택시 아저씨는 유니폼을 입고 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보면 아주 애인 삼고 싶을 정도인데, 외국 항공사들은 보면 거의 다 아줌마더만."
유니폼을 입고 앉은 입장이라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고자 했지만, 거의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을 이렇게 대놓고 할 수 있다니. 충격적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보기에나 화려하지 하는 일은 막노동 수준인데 참 불쌍하고 안 됐다고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그 돈이나 받으니 일하지 안 그러면 그런 일 누가 하느냐며.
"그렇게 내내 공부하고 승무원 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가끔은 승무원에 여러 번 도전하고 실패하고 난 뒤에 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스스로도 말 그대로 후려쳤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했던 나름의 말들도 곱씹었다. 아쉬울 게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 부정적인 인식들을 나 역시도 상기하며 그까짓 거 안 됐다고 속상해하지 말자고 여겼으니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정말로 승무원은 그까짓 직업일까
에미레이트 승무원 면접을 앞두고, 번개 스터디를 다니면서 그룹 디스커션을 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모여든 사람들의 유창하기 그지없는 영어 실력과, 자신감, 풍기는 이미지 등등에 기가 잔뜩 눌리고 말았다.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승무원 꿈을 꾸는 그 생동감에 나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합격 후에도, 트레이닝을 거치는 동안, 두꺼운 매뉴얼을 정독하고, 시험을 보고, 기본적인 비행 지식과 더불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한 다양한 상황들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되는 그 모든 과정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비스는 전체 트레이닝에서 25% 수준 정도였다.
비행을 시작하고서는, 때때로 찾아왔던 응급 상황이나 잠재적 위기 혹은 예민했던 서비스 상황 등을 다뤄야 했을 때도 있었다. 더구나 시차를 극복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외양을 유지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 역시 간단치 않았다.
물론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은 진리이기에 그렇다고 해서 승무원 일이 다른 어떤 일보다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보상이 그만큼 주어지기도 했으니 여태껏 거쳐온 나의 직업 경험에 비추어 볼 때에는 더 어려웠다고 하기도 힘들다. 다만, 누군가에게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고, 흔히들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감내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이미지들이 사실인 경우라 한들,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겠는가. 최소한의 직업적 존엄은 어디에나 있으니, 예의를 지켜달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전직 승무원이라는 이름으로
승무원 직업을 겪기 전에도 나는 늘 그랬던 것 같은데, 전직 승무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난 뒤에, '아, 승무원이셨어서 그렇구나.' 하는 인식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거나, 혹은 승무원이니까 이럴 것이다 하는 일종의 선입견을 갖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혹은 반대로, '승무원이라고 해서 이럴 줄 알았는데 아니네.'라는 말을 칭찬처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상 다른 직업군들의 경우에, 그 직업이라 이럴 것이라고 연결 짓는 경우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유독 승무원 직업에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종사하는 직무나 업의 속성에 따라 그 사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은 했던 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고하는 속성이, 회계 재무, 법무, 기획, 영업 등등 업무를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는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밥 먹고 주 5일은 직장에 종사하니 그런 것이 당연할 것이고, 승무원으로서 일하면서 몸에 밴 것들 역시 분명히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인상을 넘어선, 편견에 가까운 이미지가 나에게 덮여 쓰여 있음을 무척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른 분야로의 이직을 하며 전직 승무원들이 듣는 말들을 보면, '승무원 일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셨을 텐데 일반 사무직을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 '이 돈 받고 일하실 수 있으시겠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경험에 의해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질문이 주는 시사점은, 그만큼 승무원 직업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는 것일 것이고, 지금 만약 당신이 승무원 준비생이거나 승무원인데 나중에 다른 방향으로도 펼쳐 나가고 싶을 때 받아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니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내가 거쳐온 길과 해온 일들에 의해 스스로가 설명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그 역사가 나이기도 하고, 지나온 시간과 경험이 나를 만든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타인에 의해 규정되거나 어떤 틀 안에 가둬진다는 것은 한 끗 경계 사이에 있다. 비단 승무원이라는 직업군만이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에도 그래서 조심하려고 더욱 노력하게 된다.
승무원을 꿈꾸는 당신, 편견과 이중 감정을 견딜 준비를 하시길. 그리고 승무원을 대하는 당신, 그 편견을 잠시 내려놓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