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저는 '낙태죄' 폐지에 찬성합니다.

by 다정정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렇다. 태아는 인간이다. 인간을 죽이는 것은 살인죄다. 그러므로 낙태를 하는 것은 살인이니까 국가가 다스려야 된다. 1953년 제정된 형법 제296조, 그리고 이번에 입법예고 된 정부의 형법 개정안도 이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임신 후 몇주까지의 태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법이다. 사실 태아를 언제부터 인간으로 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합의된 개념이 없다. 가톨릭을 비롯한 기독교에서는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를 생명으로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최근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르면 임신 22주 이후를, 정부의 개정안에서는 임신 14주 이후부터를 생명으로 보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대체로 임신 22주 이후를 태아가 모체를 떠나 자립이 가능한 시기로 본다.


한편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우생학적·유전적·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과 근친간의 임신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일단 우생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우생학의 논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단 나치 독일 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이 우생학적 논리로 정신질환자나 나병 환자, 특정 범죄자들에게 강제 불임 수술을 실시했다. 법에 명시된 우생학적 질환은 연골무형성증과 낭성섬유증으로, 장애를 가지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가능성은 작지 않지만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유전적 질환은 어떤가? 다운 증후군이나 클라인펠터 증후군 등등 유전적 질환을 가진 태아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호흡이 가능하고, 모체가 없이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태어나서 오랫동안 살 수 없다고 해도, 어쨌든 얼마간이든 살 수 있다. (돌봄의 정도가 다르지 않냐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유전 질환이 없이 태어난 아기라고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같은 헌법의 생명권을 위시하여 만들어진 법일텐데 모든 생명이 존엄하기 때문에 낙태를 처벌해야 한다는 법과, 그런 낙태일지라도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특정한 생명은 배제토록 하는 법이 어떻게 공존할수 있을까? 이것부터가 현행 형법 269조 낙태의 죄가 이미 모순이 있는 법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또한 태아를 고의로 유산시키거나, 임산부에게 아이를 유산할 수 있을 정도의 폭력을 가한 사람은 단순 폭력으로 처벌을 받는다. 태아의 상태에 따라 형량의 감경은 있을 수 있겠으나, 태아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을 '태아 살인'이라는 죄목으로 처벌하지는 않는다. 이때는 태아가 받은 피해보다 임신한 여성이 입은 피해가 중점적으로 고려된다. 태아의 죽음은 가중처벌 사유는 될 수 있겠지만 그 자체가 죄는 아니다. 남성이 임신한 여성을 때려 유산을 시킬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태아를 죽인 것은 아니니까 괜찮을까? 임신한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면 당연히 태아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은 법으로 정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식 이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하다는 태아를 이러한 외부 위협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법은 전혀 없다. 태아는 오직 낙태라는 행위가 있을 때만 갑자기 생명권을 얻는다. 오로지 낙태만을 금지하면 저절로 태아의 생명권이 보장되는가? 현행 형법의 낙태죄는 절대 포괄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제발 현실을 직시 했으면 좋겠다. 낙태를 처벌한다고 해서 태아가 소중한 생명으로 저절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낙태죄는 그저 '임신을 중단한 여성'을 처벌하기 위한 법일 뿐이다. 생명 경시 풍조를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낙태죄는 1950년대부터 존재하던 법이다. 하지만 그 법이 있어서 낙태가 정말 사라졌는가? 생명은 더욱 고귀해졌는가? 낙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적으로 낙태 시술을 받던 여성들이 죽었다. 또한 생명의 값어치는 점점 더 내려간다. 얼마 전 택배 노동자 한명이 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근로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여전히 택배는 총알 택배이고, 어제 시킨 택배가 오늘 밤에 도착을 한다. 누군가의 생명을 갈아 넣어 여전히 이 사회는 굴러간다. 그 체계를 유지하는 개인은 이때 하나의 생명이라기 보다는 기계의 부품처럼 여겨진다. 나 아니라도 누구든 이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그런 세상. 다른 부품으로 대체되지 않기위해 우리 각자가 얼마나 아등바등 하고 있는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낙태죄는 생명보호라는 허울로 여성에게 임신, 출산, 양육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악법이다. 그 법은 아무 생명도 보호하지 못했다. 엄마도, 태아도. 정말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낙태죄는 제발 세월의 뒤편으로 보내주자. 보호하고 싶은 것이 정말 생명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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