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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Jan 14. 2023

오랜만에 꾼, 젊은 꿈 이야기

옆집 수영장 호스로 가글한 사연

젊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요즘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취업이 연계되는 영상디자인 학원에 다니느라 매우 바쁘다. 


더이상의 새로움이 없던 삶에 다시 배움이 더해지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따로 있다. 바로, 잊고 있던 취향이 더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 관심있는 분야를 배우며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그래서 좋은가보다.


학원의 같은 반 학생들은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나는 그 끄트머리 쯤에 속해 있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처음에는 그들의 취향이 생경하고 어리둥절 했다. 


그러나 나는 곧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동화되고 닮아가기 시작했다. 젊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을 학습하며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출발은, 결혼 전으로 시계가 멈췄던 내 취향에 현재의 스타일을 더하고 찾아나가며 취향을 업데이트하면서 시작됐다.


학원 선생님은 영상 디자인에는 '음악'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진도 나가는 시간 외에는 거의 하루 종일 음악을 다양하게 틀어준다. 팝송, 재즈, K-POP, 옛날 발라드까지 아주 다양한데 나는 자연스럽게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어떤 장르였는지, 요즘 노래 중에 귀에 꽂히는 노래는 어떤 노래인지 더듬어가며 찾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게 뭔지 알아? 요즘 학원에서 음악 듣다보니 좋더라고. 그래서 집에가서 나도 유튜브로 좋은 음악 찾아보거든. 근데 듣다보면 학원에서 틀어줬던 음악이더라. 어쩜 이렇게 우연이 겹치지?"


같은 반 학생들에게 너무 신기하고 신난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뭔가 알고 있지만 말을 아끼는 듯 '그러게'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은 이미 그 노래들을 잘 알고 좋아했을테지.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그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을 테지. 뒤늦게 요즘 노래에 눈 뜬 나에게 그들은 딱히 아는 척도, 핀잔도 주지 않고 느리게 그들의 문화에 발맞춰 뒤따라오는 나를 격려해준 게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이제 노래를 좋아하게 됐다.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나는 중학생 때, SM엔터테인먼트에 ARS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는 것. 나는 그런 끼가 있는 인물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는 당시에 ARS 전화로 오디션 접수를 받았다. 1차는 ARS로 녹음한 것을 평가하고, 2차는 동영상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나는 2차까지 동영상을 보냈다가 덜컥 합격했다. 3차부터 기획사에 방문해야 하는데 나는 거기서 그만 겁에 질려 포기했다. 어쨌든 어지간한 도전 정신과 끼를 갖춘 인물이었다.


그런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운 것 뿐인데. 인어 공주처럼 목소리를 잃은 것도 아닌데. 노래를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까마득히 잊고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을 찾자니 왠지 불행의 씨앗 같은 걸 발견할까봐 두려워서 생각을 계속 하기는 머뭇거려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노래를 다시 좋아하면서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더 행복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에서 회식을 하기로 했다.


결혼한 지 11년 만에 갖는 단체 술자리였다. 원래부터 술을 잘 마시지도 않아서 먹지도 않지만. 오랜만에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신다는 게 꽤 기대됐다. 대학생 때, 술을 못 마셔도 밤새 마시며 놀았던 때도 새록새록 기억났다. 그리고 꼭 노래방에 가곤 했지.


그래서일까. 회식이 마무리될 무렵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요즘이 또 어떤 시대인가. 코로나 시대에 목에 핏대 세우며 침 튀겨 가며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세대는 아니지 않은가. 


회식 장소에서 엘리베이터만 타고 버튼만 누르면 코인 노래방이 있었는데. 같은 건물이라 회식이 끝나고 코인 노래방에 곧바로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학원 수업도 못 나오고,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옮길거고.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집에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잠깐 졸았다. 두 세 시간 여러 사람들 틈에 앉아서 이야기만 나눠도 이렇게 피곤하구나. 오랜만에 가진 회식 자리는 나에게 정말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약간은 버거운 시간이었다.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게 장장 11년인데.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도 있지만 나는 묵묵히 할일만 하면 되었기에. 갑자기 쏟아지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갑자기 그렇게 왁자지껄 떠드는 자리는 좀 더 적응이 필요했다.


노래방에 가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나는 남편과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남편에게 회식 자리가 어땠는지 이야기도 해주고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남편과도 잠들기 전에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졸려하기 시작하자 유튜브를 틀었다. 그리고 검색을 했다.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 Karaoke'. 


영상 속에는 태진미디어의 노래방 화면이 뜨고, 멜로디에 맞춰 가사에 색깔이 변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설레기 시작했다. 남편 옆에서 누워서 처음에는 쳐다보기만 하다가 남편이 잠든 틈을 타서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새벽 한 시, 하얀 소파에 앉았다. 조용히 앉아서 유튜브 창에 뜨는 가사를 바라보며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옆집에 피해 가지 않고, 아이들이 깨지 않고, 남편도 듣지 못하게 속삭였다. 새벽 한 시에 시작된 나의 작은 노래방은 새벽 다섯시에 끝이 났다. 베란다 창 너머로 검은 하늘이 점점 푸르게 바뀌는 광경을 보다가 '이러다 내일 큰일 나겠다' 싶은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니, 자는데 옆집에서 누가 노래 부르지 않았어? 새벽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잤네"


"어? 어... 그거 나야"


"아 그래? 당신이었어? 나 근데 여보 꿈꾼거 같아. 옆집이 아니라 꿈이었구나. 나 꿈을 꿨는데 말이야, 내가 지금 이 아파트 말고, 수영장이 딸린 고급 주택에 살고 있었거든. 그런데 우리 옆집도 수영장이 있는 전원 주택이었어. 


근데 그 옆집에 어떤 아줌마가 살고 있더라. 그런데 글쎄 그 아줌마가 수영장에 앉아서 계속 노래를 부르는거야. 어찌나 시끄럽게 부르던지. 내가 너무 시끄러워서 우리집에 있는 수영장 호스를 그 아줌마 등 뒤에 쐈거든? 노래 그만 부르라고. 근데 그 아줌마가 글쎄 피할 줄 알았더니... 뒤돌아서 그 호스 물로 가글을 하는거 있지? 진짜 어이없는 꿈이지?"


"뭐야 꿈 되게 이상하다. 그 아줌마가 나인거야? 나 수영장 호스로 가글한거야?"


오늘 남편 컨디션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오전부터 할 일이 있었는데, 내 딴엔 아무리 조용히 불렀 더라도 남편 귀에는 그게 다 들렸단다. 잠을 설쳤다고 한다. 남편은 결국 아침만 겨우 먹고 다시 오후 두시 넘어서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서야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꾼 젊은 나의 꿈. 하얀 소파였든, 남편의 꿈 속에서였든 중요한 건 나는 젊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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