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만든 다른 누군가의 책. 다른 누군가의 꿈.
얼마 전, 저녁 무렵에 핸드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찍힌 번호는 전혀 모르는 번호. 요즘 워낙 쓸데없는 전화가 많이 오다 보니 뜨는 번호를 보면서 고민을 합니다.
받을까? 말까?
15**나 070이었다면 아마 바로 끊었을 겁니다. 일반 핸드폰 번호이기에 혹시나 하고 받아 봅니다. 핸드폰 너머 저 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머뭇거림이 느껴집니다.
"혹시, 책 만들어 주는 곳 맞나요?"
앳된 여자 목소리, 학생 같았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밝혔지만 나의 1인 출판사는 수익을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내 개인 블로그에 소개하는 글도 적어 두고, 무료 계정으로 간단한 홈페이지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설마 이것을 보고 누가 나에게 책을 부탁을 할까 하는 생각에 처음에 적어둔 글 그대로 거의 방치상태였는데, 그것을 보고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은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거나, 주변의 지인들의 부탁으로 만들어 준 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책을 만들어 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지요.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을 한 것이냐 물으니 맞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데요?"
자기가 작업한 내용이 있는데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하더군요. 그리고 제작에 필요한 시간이 얼마인지도 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제주도라 택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 주었습니다. 일단, 어떤 내용인지 보아야 자세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책으로 만들 자료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통화를 할 당시가 목요일 저녁이었는데 주말까지 작업을 마무리 짓고 자료를 보내겠답니다.
월요일 오전에 문자가 왔습니다.
"죄송한데, 지금 학교라서 오늘 오후에 메일 보내드려도 될까요?"
학생이 맞는 것 같습니다.
책을 만드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 예상을 해 보기 위해서 문자로 만들 책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정보로 볼 때 제작을 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몇 시간 뒤, 메일을 보냈다는 문자를 받고 메일함을 열어 pdf 파일을 내려받아 확인해봅니다.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과 글씨가 담겨있었으며 아기자기한 그림과 글씨가 참 예뻤습니다. 그런데 이 상태로 인쇄를 하면 바깥 부분의 그림과 글씨가 잘려 나갈 것 같았습니다.
"이 상태면 그림이 잘려 나갈 것 같으니, 제대로 인쇄될 수 있게 작업해서 보내드릴게요."
이렇게 통화를 하고 서둘러 받은 자료를 인쇄될 사이즈에 맞추어 손을 조금 봅니다. 그리고 작업한 자료를 다시 메일로 보내고 OK확인을 받은 뒤 인쇄를 맡깁니다. 빨리 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아 그 날 저녁에 인쇄를 위한 모든 작업을 서둘러 진행했습니다. 인쇄를 맡기고 책을 받을 주소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주소를 보니 주문한 사람이 학생 맞습니다. 그것도 고등학생.
며칠 뒤 인쇄소에 전화해서 출고 확인하고 택배 송장번호도 확인합니다. 일단 문자로 송장번호를 학생에게 보내주고 나도 조회를 해 봅니다. 다행히 택배는 제주도로 넘어가 있었고 원하는 날짜에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다음 주 월요일. 첵이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서 문자를 보냅니다.
문자를 보니 책은 무사히 잘 도착한 듯합니다. 그리고 학생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구요.
이렇게 외부 의뢰 책 1호가 무사히 만들어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모르는 사람에게서 제작 의뢰가 들어온 것도 신기했지만, 모르는 누군가의 바람을 나의 작은 재주로 도울 수 있었던 것도 참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꿈공작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