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저나무 Jun 30. 2017

로저 워터스│Is This The Life We...

시대를 향해 일갈하는 한 사람의 거장

Roger Waters│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Columbia, 2017.

음악가 : Roger Waters(로저 워터스)

음반명 :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

발매일 : 2017.06.02.

수록곡

1. When We Were Young

2. Déjà Vu

3. The Last Refugee

4. Picture That

5. Broken Bones

6.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

7. Bird in a Gale

8. The Most Beautiful Girl

9. Smell the Roses

10. Wait for Her

11. Oceans Apart

12. Part of Me Died


 청자에게 있어서 음악 감상이란 매우 사적인 경험이다. 스마트폰으로 취향에 맞게 재생목록을 꾸리는 청자들은 헤드폰을 착용함으로써 외부와 단절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선율에 취해 운명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되거나, 강력한 음압에 몸을 맡기며 묵은 체증을 날려 보낸다. 한 사람을 위한 작은 콘서트가 열리는 순간이다. 그런가 하면 음악은 집단적 경험의 형태로 청자 앞에 재현되기도 한다. 음악가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얻은 밥 딜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가 읊조리던 반전의 메시지는 현실의 부조리를 꼬집는 음유시인의 예리한 통찰이었으며 통렬한 비판이었다. 노래를 함께 부르며 청자는 각성에 이른다. 국민이 촛불을 들고일어난 그때, 우리가 입을 모아 노래 부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기, 팔순을 바라보는 한 거장이 있다. 독재자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 했던 그는 어느 누구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인물이었다. 전쟁의 참상, 현대인의 고독감, 힘의 논리에 대한 맹신 등 거장의 음악은 달콤한 판타지가 아닌 쓰디쓴 현실을 담아내고 있었다. 개인의 내밀한 정서를 간질이는 대신 드넓은 광장으로 나아가는 쪽을 택한 것이다. 전작으로부터 무려 25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육체는 노쇠했을지언정 시선은 날카롭고 언어는 매섭게 꽂힌다. 로저 워터스의 네 번째 정규 음반,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다.


 나지막한 속삭임으로 음반의 포문을 여는 "When We Were Young"에서부터 의문은 시작된다. 신을 향해 치유될 기미조차 없는 지리멸렬한 현실의 책임을 묻는다. 이어지는 것은 탄식이다. 자신이 신이었다면 세상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으리라는 한숨 섞인 가정과 함께 "Déjà Vu"는 세상의 문제를 들춰낸다.


사원은 폐허가 되고 은행가는 배를 불리고
버펄로는 사라지고 산은 평평해지네
개울의 송어는 자웅동체
진보인 당신은 보수에 표를 던지지


사회, 환경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까지 건드리는 그의 문제의식은 곡을 이끄는 어쿠스틱 기타 리프가 자본가를 돼지에 빗대 비판했던 "Pigs On the Wing"*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Roger Waters - The Last Refugee

 다음 트랙 "The Last Refugee"에서 워터스의 시선은 한 여성에게 향한다. 고향을 덮친 전쟁의 화마로 인해 피난민이 된 여성은 난리통에 아이를 잃고 말았다. 슬픔을 담아낸 그의 춤사위가 워터스의 절규에 가까운 보컬과 맞물려 비극성을 더한다. "Picture That"에서 비통함은 분노로 변모한다. '빌어먹을 법이 없는 법원 / 매춘부 없는 매음굴 / 배수가 안 되는 화장실 / 어리석은 지도자' 등의 비유를 통해 현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쏟아낸다. 여기에 핑크 플로이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신시사이저와 간결하지만 묵직한 베이스가 긴장감을 형성한다.


 어쿠스틱 기타 위로 부드럽게 깔리는 현악 구성이 "Broken Bones"의 시작을 알린다. 음악가는 전쟁으로 죽어간 이들을 외면하고 아메리칸 드림으로 상징되는 풍요에 몸을 맡긴 어리석은 현세대를 뒤로 하고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건다. 그들의 출신에 상관없이 건강한 정신을 품고 자라길 바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에서는 이전 트랙의 말미에서 던진 메시지가 본격화된다. 지난 2월 있었던 트럼프와 CNN 기자 사이의 언쟁으로 시작되는 본 곡은 어리석은 지도자로 인해 사회에 닥쳐올 혼돈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다. 그러나 비판의 화살은 한 사람에게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개미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대중을 지적하며 사회에 만연한 부당함을 암묵적으로 용인한 모두가 부역자임을 강조한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Bird in a Gale"에서 드론 전쟁의 부도덕성, 인간성의 말살을 고발하는 것 또한 이러한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이 곡은 다큐멘터리 <내셔널 버드 National Bird>(2016)에서 영향을 받은 바 있다).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은 여인의 이야기("The Most Beautiful Girl"), 돈의 논리에 매몰되어 장미로 표상되는 아름다운 가치 대신 사람이 타는 죽음의 냄새가 만연하게 된 세상("Smell the Roses")을 지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보던 음악가의 시선이 잠시 머나먼 바다로 향한다.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를 차용한 "Wait for Her"를 시작으로 그는 현실의 고통을 덜어줄 구원자를 마음속에 그린다. 살랑이는 어쿠스틱 기타, 차분함을 더하는 건반에 몸을 맡기며 조심스레 낱말을 뱉어낸다. 세상에 고통을 안긴 질투, 탐욕, 잔인성, 편협함 따위의 것들. 이들과 뒤섞여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가느니 '그녀'의 품 안에서 죽는 것이 편안할지도 모른다("Part of Me Died").


 구원은 없었다. 분노와 탄식을 토해내던 음악가가 택한 것은 결국 '그녀'로 상징되는 도피처였다. 음악을 무기 삼아 평생을 부조리와 싸워왔던 그가 이제 와서 현실에 굴복하고만 것일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Broken Bones"에서 암시했듯 팔순을 바라보는 거장은 가슴 한편에 품고 있던 작은 희망을 젊은 세대에게 넘긴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던 삶인가?'라는 물음 너머, '우리가 원하던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 말이다. 슬픔과 고통의 장막을 걷어내고 세상에 광명이 비추는 순간의 도래, 그것은 우리의 몫이다.


3.5/5.0


* 핑크 플로이드의 <Animals>(1977) 수록곡.


Roger Waters - Wait for Her


매거진의 이전글 로드│Melodram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