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후기
* 본 게시물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편의 영화가 있다. 피부색, 생김새, 고향, 유머 코드 그리고 심지어 종(!)까지 다른 인물들이 스크린 속에서 활개 치는데 어딘가 엉성하다. 손발 안 맞는 것은 기본이고 아군이라 해도 심사가 뒤틀리면 욕지거리를 쏟아내니 당최 히어로인지 빌런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 괴짜들로부터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다. 왜냐고? 의외로 이유는 단순하다. 우주가 나오고, 말하는 너구리가 나오고, 음악이 나온다. 완벽한 영화라는 뜻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관객에게 안겨준 유쾌함에 호응하듯 그 속편 또한 시작부터 유쾌하다. 행성 소버린의 대여사제 아이샤의 의뢰로 애뉴렉스 배터리를 노리는 우주 산낙지 처치 임무를 맡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 삐걱거리는 팀 워크지만 특유의 재치로 가볍게 임무를 완수한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가모라의 동생 네뷸라를 얌전히 넘겨받는가 싶더니 역시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손버릇 나쁜 라쿤이 배터리를 슬쩍하면서 이들의 두 번째 고생길이 열린다. 참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답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난파당한 도입부의 상황과 대조적으로 영화의 분위기는 무겁게 흘러간다. 자존심 싸움으로 시작했던 피터 퀼과 로켓의 언쟁은 팀 존속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줄 아버지 에고가 등장하자 피터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냥 해맑기만 한 베이비 그루트, 생식주의자 네뷸라와 함께 남겨진 로켓. 라바저스 내부의 쿠데타에 이들이 엮이면서 상황은 꼬이고 꼬이고 꼬여만 간다.
MCU 사상 역대급 스케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리즈에서 한 번이라도 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할 망정, 영화는 어째서 팀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것일까?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가 B급 감성에 빚을 진 탓이기도 하지만, 서사 차원에서 봤을 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이 애초에 온전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퍼히어로로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던 어벤저스와는 달리 한 인상하는 이들에게는 목적이랄 것이 없었다. 도적단 일원, 암살자,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온 아웃사이더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히려 대의(大義)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이는 곧 주류가 되지 못한 그들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던 끈이 끊어지는 순간,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암시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팀을 일시적으로 와해시킨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팀원들이 가슴 한 편에 품고 있던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다. 피터가 궁금해하던 출생의 비밀, 가모라-네뷸라 자매 간의 증오, 이상하리만치 동료에게 까칠한 로켓의 심리는 우주선의 난파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뿌리 찾기에 대한 일종의 갈증인 셈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비롯된 문제는 답을 찾는 순간,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을 스스로 풀기 시작한다. 다툼이 아닌 대화를 통해 서로의 진심을 드러내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시선이 한 곳을 바라본다. 우주의 평화를 위협하는 단 하나의 적, 에고 더 리빙 플래닛(Ego The Living Planet).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뻔하다. 삐걱대고, 윽박지르고, 테이프를 찾다가 그루트가 해낸다. 완벽한 영화의 완벽한 결말이다.
영화의 넘버링이 '볼륨 2'로 되어 있는 만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0곡이 넘어가는 수록곡 하나하나를 짚어가는 것은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될 듯하므로 인상 깊었던 음악 몇 가지를 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항구도시의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여성을 보고 사랑에 빠진 한 선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대방에게 말을 건네는 남성의 시점에서 불리는 노래인 만큼 가창과 대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보컬이 재미있다. 피터의 어머니 메레디스 퀼과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 행복에 젖어 드라이브를 즐기며 흥얼대던 바로 그 곡이기도 하다. 낯선 도시의 여성과 사랑에 빠진 이방인이라는 테마가 영화 속 피터의 부모와 합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밥 로스 아저씨를 닮은 리더 제프 린(Jeff Lynee)을 중심으로 7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록 그룹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약칭 ELO)의 77년도 음반 <Out Of The Blue>에 수록된 곡이다. 건반과 드럼이 빚어내는 경쾌한 리듬과 풍부한 코러스의 활용이 이름에 걸맞게 푸르른 느낌을 자아낸다. 후반부의 전개 변화는 한동안 작업에 난항을 겪다 우연히 비친 햇빛에 영감을 얻어 곡을 쓸 수 있었다는 제프 린의 인터뷰 내용이 그대로 반영된 듯한 인상을 준다. 영화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우주 산낙지와 전투를 벌이는 장면에 삽입되었다.
영국 출신 록 밴드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Rumours>(1977)에 수록된 곡이다. 런던의 블루스 리바이벌 붐에 힘 입어 출발한 팀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본 음반은 아이러니하게도 팝 성향이 짙게 배어있는데, 이는 지난 음반부터 멤버로 합류한 미국인 음악가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과 스티비 닉스(Stevie Nicks)의 영향이다. 플리트우드 맥을 영미 합작 밴드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음반 제작 당시 부부였던 존과 크리스틴 맥비(John & Christine McVie) 부부는 이혼 위기에 놓여 있었으며 연인이었던 린지와 스티비 또한 파경에 이른 상태였다. 멤버들은 불안한 기류가 감도는 와중에도 이를 회피하기보단 음악에 적극적으로 투영하려 하길 선택하였는데, 그 결과가 바로 명작 <Rumours>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에고의 마지막 대결 장면에 삽입되었는데 영화의 핵심 테마가 '관계'라는 점에서 참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음악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에서 갖는 의미는 단순한 배경음악 정도가 아니다. 우주를 무대로 하는 역대급 스케일의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말투, 생김새, 사고방식까지 그 무엇 하나 일치되는 것이 없다. 게다가 관객에게 익숙한 수퍼히어로가 아닌 '한낱 아웃사이더들' 아닌가. 이러한 설정이 결국 관객과 영화 속 인물들 간에 거리감을 형성해 버린 것이다. 때문에 감독은 이를 매우기 위해 찬란하게 빛나던 80년대의 음악으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였다. 결과는? 당연히 끝내준다(Awes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