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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23. 2023

나의 삶을 산다는 것

나도 해방클럽 만들어 볼까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마음에 들어갔다 나올 때,

주변에서 "이거 진짜 네가 좋아할 스타일이야"라고 추천해주었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대사들이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늘,

1화도 보지 않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의 인연으로 만난 염미정의 나레이션 모음을 출근길에 들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버스 안의 공기마저 무거운 아침

평소보다 한시간쯤 늦게 일어났고 9시부터 5시까지 1시간도 빠짐없이 채워진 일정표를 보며 한숨을 쉬던 중



눈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온 그 말이 마음을 툭하고 건들였다.

처음듣는 말이 아니었다.

언젠가 일기에 썼던 문장이다.

그리고 요즘 내 마음을 딱 대변하는 문장.

'누가 내 감정 사찰했나' 라는 썸네일의 문구처럼 섣불리 내뱉을 수 없는 진심을 들킨 것 같았다.


개강을 맞이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만 생각했다.

주말에는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사람을 만났고

평일 못지 않은 주말이 끝나면 또 평일이었다.

내가 하는 것이 상담인지 그냥 아무말인지 알 수 없는 때가 다시 찾아왔다.

일부러 출근도 일찍 했다.

일이 너무 많아 9시 정각에 출근하면 도저히 행정업무를 건들일 시간이 없어서

남들보다 일찍 나와 쌓여있는 일들을 처리했다.

모든 것이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루.

'일'이 끝나면 배터리가 다 닳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방전 상태가 되고 마는 삶.

내가 바라던 삶이 이런 모습이었나?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나의 조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휴대폰에서 인스타그램을 지운 이유도 조급함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진 것들이 자꾸만 작아지고

나의 정체성이 모자란 것처럼 느껴지는 게 싫어서

어떤 날은 '단절'을 바라기도 했고

'단절'의 끝은 결국 '죽음'인가 하며 헛웃음을 치던 날도 있었다.


나의 질병이

나의 과거가

내가 가진 전부라고 여겼던 날들

그 날들은 어쩌면 내 평생과 같아서 쉽게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다르면서도 비슷하기에

어떤 일부에만 집중하면 금새 불행지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런 일부는 갖고 살아가니까.


내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내가 얼마나 슬프고 아팠는지

그런 건 나의 것이지, 나의 일부일뿐이지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무리 들이밀어도 먹히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픔을 붙잡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만하고 싶은데 잘 안되서 힘들다. 괴로워.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정말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사람말야.


'일'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인정에 집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조금 못해도 조금 부족해도

'삶'은 '일'만이 아닌, 내가 원하고 목표로 하는 태도와 관점에 어긋나지 않게끔 살아나가고 싶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 판단을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영향력을 (특히나 부정적인 것들은) 최소화하고 싶다.

어떤 한 순간이라도, 하루에 10분이라도 아니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이라도

어떤 것들로부터든 해방시켜주고 싶다.

해방된 상태에서 정직하게 나의 마음으로,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균형을 잃는 것보다 낫다는 미정의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






이제 5시까지는 업무시간이다.

정해진 시간은 업무에 집중하고 그 이후의 시간의 '나의 삶'으로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기를.

나를 탓하고 비교하지 않기를.

그리고 다시 깊게 고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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