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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n 29. 2023

[섭식장애 회복] 몸을 통해 말하는 사람들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섭식장애 다큐멘터리 


엄마는 거의 평생을 물어왔다. 대체 왜 그러냐고 뭐 때문에 그러냐고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엄마가 죄책감을 느꼈으면 좋겠어? 너한테 미안해서 미안해하다 병이라도 나서 죽었으면 싶어? 안 그래도 사는 게 너무 너무 힘든데 대체 너까지 왜그러냐고.


하지만 엄마, 나는 한번도 엄마에게 묻지 못했어. 

엄마는 진심으로 궁금한 적이 있어? 단 한번이라도 말야.

'왜'가 아니라 '어디가', '어떻게', '얼만큼' 아픈지 말야.


-


영화 속에서 좁은 부엌에 쪼그려 앉아 '그 때 그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방어할 틈도 없이 나를 무너뜨렸다. 부러웠던 걸까? 어떤 방식으로든 두 사람이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부러웠지만, 그보다 채영님의 표정이 낯설지 않아서 그의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이, 마음들이 아주 멀게 느껴지지 않아서 기쁘고 슬펐다. 10년이 훨씬 넘도록 이 병으로 삶을 헤엄치며 살았지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가깝게 와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글도 아닌 말로, 문자가 아닌 목소리가.




주체성과 주도권


섭식장애가 처음 내 삶에 찾아왔을 때, 당시엔 그게 섭식장애인줄도 몰랐고 이렇게나 오-래 함께할 줄도 몰랐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비빌 언덕이 생겼구나. 다른 '나'가 될 수 있고 어쩌면 그게 '진짜 나'일지도 몰라.' 먹고 싶지 않을 땐 먹지 않았고 토하고 싶을 땐 토했고 조금이라도 먹고 싶어지면 위가 터질듯이 먹어댔다. 그 모든 행위가 나로부터 시작해 내가 진두지휘 하며 엉망진창일지라도 끝 또한 내가 맺는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그랬다. 내 몸을 망가뜨리는 것도 살리는 것도 다시 죽음의 선 위에 올려 놓는 것도 전부 스스로 하는 일이었으니까, 무엇하나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지옥같은 가정환경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선택이었고 아빠보다 더 심하게 스스로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마저 '나로 살아가는 감각'이었다.


죽도록 미워했고 동시에 미치도록 아끼고 원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겠어' 집착에 미친 캐릭터들의 단골 대사가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집안 문제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나의 섭식장애 역시 깊어졌다. 어쩌면 엄마 말이 맞는지도 몰라.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그리고 그 때와 연관된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알리고 싶었다. 당신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지독하고 비겁한지 보라고, 나를 위한다는 그 위선들을 향해 외쳤다. 여길 좀 봐요, 제대로 망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 모든 화살은 결국 돌아왔다. 내가 문제가 됐다. 아 내가 문제구나 거기서부터 다시 한번, 내 인생은 거하게 꼬였다. '더 말라야 하나? 더 토해야 하나?' 그러다 결국 마르지 않고 토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어. 진심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어. '왜 그러니'라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었다. 비난이었고 책망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내게 없었다.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말을 잃었다. 말하고 싶어서 먹고 토했는데 먹고 토하다 말을 잃었고 먹고 토하는 것마저 잃을까 더 매달렸다. 그렇게 주체성과 주도권을 위해 잡은 동아줄은 썩은 동아줄이 되었고 삶이 되고 내가 되었다.


-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먹고 토하면서 만들어진 내 몸은 타인의 부러움을 샀다. 온갖 복잡한 골칫거리가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 내 병은 사회의 미적 기준을 충족하는데 한 몫했고 사람들은 내 말에 귀기울였다. 어떻게 식단을 조절하는지, 어떻게 운동하는지, 어떻게 살을 뺐는지…웃기지? 그러다 잘 먹지만 살 안 찌는 여자 연예인들이 주목을 받고 (과연 그들이 정말 잘 먹지만 살이 안찌는 체질이었을까?) 그들의 이름을 단 식단들의 유행이 꺼져갈 즈음 나의 말도 바꼈다. 식단 조절도 하지 않고 운동에 목 매지도 않는데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사람이 되어 말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나는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것 같다. 관심 받고 싶었다. 그래서 관심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연기하는 능력만 커졌다.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이지?' 가끔씩 찾아오는 의문이 버거워 더 섭식장애에 몰두했다. 이것만 생각하자. 이것만 생각하면 돼. 10년 이상 이어진 병은 이 사회와 아주 잘 어울렸다.





어느 정도 섭식장애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이 병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을 찾아 읽고 심리 치료 기법들에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논문까지 찾아 읽는다. 환자이자 전문가의 타이틀을 갖는 신기한 사람들이다. 영화 속 채영님이 엄마에게, 감독에게/관객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 잘 정돈된 느낌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 그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자신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계속 왜냐고 묻는데 나조차 답을 모르겠어서 하지만 너무나 필요하고 절박한 이 병…병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부르고 싶지 않았던) 그 모든 행위를 제대로 해내고 또 나만큼은 이해하고 싶었을 그 마음을 전부는 아니지만 나 역시 모르지 않기에 채영님의 일기나 나레이션이 나올 때마다 하릴없이 눈물 흘렸다.


단지 다이어트에 미친 사람들이 걸리는 병
살 빼려다 걸리는 병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



영화는 이 병이 가진 빽빽한 편견을 노리진 않았으나 (노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섭식장애의 '자극적이기만 한' 면에 집착한 미디어들보다 훨씬 진한 여운을 남긴다. 섭식장애 당사자라면 혹은 당사자와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이제야 진짜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을 만난 것 같을 것이다. 사실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몇번이고 보고 몇번이고 울고 몇번이고 이야기하고 싶다. 더 오래 깊게 채영님의 표정을 바라보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다. 사실 아직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ㅎㅎ)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고통이 수반되긴 하지만 그래도 그마저도 내가 지금껏 만난 섭식장애 이야기와는 달라서 견디고서라도 보고 싶다.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이거...엄마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머니(상옥님)의 이야기 비중이 크게 느껴졌다. 그 부분이 다소 이질적이기도 했지만, '이 병을 나 혼자 겪었나?' 라는 채영님의 말처럼 지금껏 한번도 제대로 엄마와 섭식장애의 관계를 생각해본 적 없었던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음을.....어렵지만 인정한다. 영영 당사자의 마음을 알 길이 없어 헤매고 망설이고 몸서리치는 모습 또한 섭식장애의 일부니까. 






섭식장애에 관해 그렇게나 많이 이야기해왔지만, 나는 엄마와 이 병에 대해서 그리고 그 때의 나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마치 금기의 영역같아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시한폭탄 같아서 하루 이틀 미루다보니 어느새 몇 년이 훌쩍 흘렀다. 당장은 용기가 나지 않지만 언젠가 엄마와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싶다. 엄마는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세웠어? 엄마도 어떤 날은 화장실 문 앞에서 숨죽여 울기도 했어? 내가 토해놓은 검은 봉지를 치우며 무슨 생각을 했어? 나는 꽤 자주 엄마에게 미안했는데 엄마는 어땠어? 엄마는 내 목소리가 들렸던 적이 있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말았던 질문들을 물어보고 싶다. 어쩌면 그게 게임의 최종 보스처럼 내 회복의 끝판왕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너무나도 공식적이고 적나라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준 채영님과 어머님(상옥님)께 무한의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고자 했던 김보람 감독님의 결정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용기를 내야지. 우리 계속 이야기하자. 

(아마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울컥 울컥 차 올라서 또 글을 쓰러 오지 않을까 싶다.

 여기 쓴 내용은 내 마음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니까)


채영님의 영화에 뒤쳐지지 않는 이야기가 계속 듣고 싶다. 

사실 관객 중 한명으로서 이미 영화가 만들어진 순간부터 영화는 멈춰있고 채영님은 살아나가고 계시지 않은가 싶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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