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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l 05. 2023

자격증 시험을 쳤고 떨어졌다.

- 시험불안으로 토익 7년만에 쳤던 사람







시험에 떨어졌다.

예상했던 결과였고 생각보다 시험 점수가 괜찮았지만 어김없이 실망했다.

노력했으면, 미루지 않았으면 훨씬 더 괜찮은 점수가 나올 수 있었을텐데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나는 또 겁을 먹고 도망쳤다.

그래도 이번엔 다시 돌아와 시험을 쳤다는 점에선 칭찬해주고 싶다.


나의 시험불안은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중학생 때 학원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너 틀렸는데 왜 고쳐서 맞았다고 했어?"

진짜 시험도 아닌 학원 숙제에서도 나는 틀리는 게 싫어서 정확히 말하면 남들에게 내가 틀렸다는 걸 숨기고 싶어서 지우개로 답을 고쳐가매 동그라미를 치던 애였다.

뭐가 그렇게 들키기 싫었을까? 들키면 어떻게 될 것 같았길래?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 내가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기 바빴고 틀린 것도 맞은 걸로 바꾸기 바빴다.

돌아보면 제대로 안다는 것, 배운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래서 시험이 싫었다.

숨길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고 결과가 대놓고 나와버리는 진짜 시험이 너무 너무 두려웠다.

토익 시험을 신청해두고선 교문 앞에서 몸을 돌린 이유 역시, 내 진짜 실력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결과가 아니면 누구도 나를 칭찬해주지 않을거야.

칭찬은 커녕, 비웃고 혼내기 바쁘겠지? 그런 생각이 어린 이진솔에겐 당연했다.

공부 잘하는 애가 되고 싶었다. 그냥 어떻게든 잘하고 싶었지.

나중엔 잘하는 것처럼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해야한다고.


그러니 얼마나 열등감에 찌들어 있었겠는가

비교는 내 인생에서 뺄 수 없는 당연하고 지독한 것이었다.

나는 나를 채우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배울 마음도 없었고) 껍데기가 중요하다는 착각에 빠졌었다.

그 착각은 꽤 오래갔다. 증명할 필요 없는 길만 선택하면 괜찮았으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고 취업이 눈 앞에 다가왔을 때,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안다는 것은, 제대로 한다는 것은

어떤 증명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나는 아니었다. 아니어도 너무 아니었다.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서 많이 헤맸다. 척 하고 싶지도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매일매일을 보냈다.

그 때즈음 완벽한 공부법이라든가 단기가 아닌 장기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됐다.

실패하고 무너지고 하지만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거기서 위로와 조언을 많이 얻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최종 결과값을 바라면 안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도 그때서야 이해했다.

세상에는 직접 부딪혀 가며 알고 배우고 채워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들의 인정보다는 '나'의 방향과 목표 지점을 중심에 두고 몇번이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안심이 됐다. 50대에도 60대에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내가 뭐가 두렵지?

실패도 이렇게나 멋진 썰이 될 수 있잖아!? 하며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 위에 (내 것이 아닌 것 위에)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덧대기 시작했다.


'일단 치러가자. 시험 치는 게 목표'

누가 들으면 그게 무슨 목표냐 하겠지만 나한텐 지금도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큰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해야 다음이 온다.

언젠가는 시험 치는 게 목표라는 소리를 안하는 게(ㅋㅋㅋㅋ) 목표이긴 한데

아직은 멀었다.


그러니까 이번 시험은 떨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미련하고 멍청해보일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이 필요한 사람이다.

낭비라고 할 수도 있고 필요 없는 고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떡하겠어? 이게 나인걸.


이번 불합격을 통해 배운 점(느낀 점)을 잘 정리해서 다음 시험은 합격하는 게 목표다.

늘 2번씩 해야하냐 (혹은 그 이상) 나도 내가 답답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훨씬 낫잖아.


하루에 너무 많은 양, 시간을 쓰려고 하지 않

한번 읽을 때 외우려고 하지 않기

남이 정리해 준 것도 나의 방식으로 정리해보기 (제목, 소제목을 내 방식대로 달아본다거나)

기출문제 푸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두번째다. 나는 무작정 외우기에 젬병인 사람이기 때문에 읽을 때 무조건 외워야 돼! 할수록 효율이 떨어진다.

읽을 때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나만의 스토리를 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1회독으론 안되니까 3-4회독 하는 방법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


시험 불안은 곧 평가와 능력에 대한 인정 욕구와 연결된다. (나는 그렇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마음이기 때문에 없애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인정 받기 위해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한번, 두번 못해도 다음이 있다는 것을 꾸준히 알려주기

적어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이 터널을 지나야 한다면, 결국 지나야 하니까 조급해하지 않기.

지나가면 되니까.


눈속임은 하고 싶지 않다. 결국 들키게 되어있고 세상은 눈속임할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니까.

정공법으로 맞서겠다.

그게 내가 이 불안을 다루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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