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인 그는 공학도였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IT회사에 근무하다 다국적 기업의 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퇴직 후 노모를 모시고 산다고 시골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근무 시간 외에는 우리나라의 큰 산과 외국의 산까지 누비던 산사나이가 과연 정적인 농촌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남은 넓은 농토가 어찌 되려나 궁금했는데 아예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며 신기했다. 어머니를 돕다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 지 5년이 되었는데 이제 채소들을 상품으로 팔 수 있을 것 같다며 사촌들이 모이는 SNS에 여름내 키운 농산물을 소개했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내내 땡볕에 나가 일을 했을 농부의 수고가 고맙기도 하고, 사진으로 보여주는 호박, 고추, 감자, 토마토, 마늘이 하도 보기 좋아서 앞으로 회원제로 계속 사먹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촌들 역시 마늘과 감자를 앞 다투어 구매했고, 팔순의 고모는 이웃과 나눠 드신다며 감자를 여러 박스 주문 하셨다.
며칠 후 상품이 배송되었는데 크기가 큰 감자, 자잘한 조림감자, 홍감자까지 정성이 박스마다 가득했다. 상품성이 좀 떨어지지만 먹는 데는 이상 없다며 덤으로 준 감자는 군데군데 움푹 파인 흠이 있었다. 그것은 흙속에 사는 굼벵이가 먼저 시식을 한 것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매끈한 상품을 좋아하지만 사실 무농약으로 자라는 푸성귀나 뿌리채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흠이 나기 마련이다. 가능한 자연주의 밥상을 차리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굼벵이가 조금 파먹고 남겨준 감자를 먹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농산물의 구독(회원이 되어 정기적으로 구매를 하는 소비방법)을 통해 그동안 소식이 뜸하던 사촌형제들 간에 갖가지 소식이 오고갔다. 특히 농부인 사촌의 집에 두 번이나 새 가족이 찾아든 소식은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처마 밑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제비를 다른 천적들로부터 지키며 어미 제비에게 돌려주는 사진과 참깨 밭 깊숙이 둥지를 튼 새의 알이 부화되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아기 제비는 무사히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가 아빠 엄마가 번갈아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날개의 힘을 키우는데, 참깨 밭에서 부화된 새들은 갑작스러운 폭우에 고스란히 비를 맞았고 무엇보다 참깨 줄기에 낮게 붙여 지은 둥지가 문제였다. 들짐승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 농부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한창 수확을 하는 시기에는 하루가 바쁘다. 그 와중에 두 개 남았던 알마저 부화되어 털도 없이 꼬물대는 다섯 마리의 동영상과 함께 메시지가 올라왔다. ‘둥지 근처에 접근하면 부근에서 애절하게 우는 어미 새의 소리가 들림. 그냥 자연의 순리대로 내버려 두느냐, 내가 개입해서 아기 새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게 하느냐 내일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겠음.’
그는 제초제와 살충제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짓지만 자신이 풀을 뽑지 않아 참깨 밭이 수풀을 이루었기에 새가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며 노심초사 했다.
다음날 단체톡에는 고추지지대로 만든 안전한 요새 안의 둥지와 동영상이 올라왔다. 밤새 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지만 아기 새들은 살아남았고 어미 새는 바삐 먹이를 물어다 먹이며 온몸으로 맨몸의 새끼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