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처음 왔을 때 같은 어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나이는 10살 정도 차이 났지만 A와 나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나이가 어리다고 성급하게 나서서 충고를 한다거나 아는 체를 할 수 없다. 그 친구도 호주가 처음이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친구에게 호주에서 살아남는 스킬을 배우기도 하고 공허함과 외로움을 위로받기도 한다.
A는 낮에는 중국인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사무실 청소를 했다. 워킹 비자로 온 그녀는 직장을 얻는게 어렵지 않았다. 아직 30대를 넘지 않은 친구들에게 워킹 비자는 나름의 경험과 모험을 쥐어 준다. 그래서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젊은 청년들이 호주로 넘어와서 청소도 하고 커피숍,식당 알바, 농장에서 체리도 따고 꽃도 꺾었다. 호주는 아직까지 일거리가 많다.
"언니, 이 것좀 먹어봐요 맛있어요. 음식이 남아서 싸들고 왔어요. 중국인 사장이 남으면 버린다고 가져가라고 하더라고요. 언니 생각나서 들고 왔어요"
"우와, 정말 고마워 난 줄게 없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남아서 가져온 건데요"
A는 고맙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며 나를 잘 챙겨 줬다. 호주 한국일보에 들어가기 전 나는 어학원이 끝나면 집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하며 뜻하지 않게 한량이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받은 투명한 일회용 플라스틱에는 큼지막한 새우 2마리가 밥알에 박혀있었다. 살이 오동통 오른 큰 새우다. 그녀가 건내준 온정에는 노란색 카레에 닭고기가 들어있는 카레 밥 일 때도 있었고, 또 어쩔 때는 간장도 아닌 검은 소스에 돼지고기가 뒤섞여 있는 볶음밥일 때도 있었다. 도시락통을 들고 잔디에 앉아 맞은편 식당에서 호기롭게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밥알이 흩날릴까 아슬아슬하게 숟가락을 들고 입을 크게 벌려 볶음밥을 밀어 넣었다.
"언니 저 이제 일 그만두고 시드니 전역을 여행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려고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울컥했다. 이런 따뜻한 저녁 식사도 이젠 작별이지만 친구를 떠나보내는 슬픔이 더했다.
"아쉽다"
"호주 전역을 여행하고 한국 가서 복학해야지요"
"돈은 많이 모았어?"
"그냥, 여행하고 등록금에 보탤 정도는 돼요"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네 한국 가면 남자 친구도 사귀고 그래"
"네, 근데 점쟁이가 그러더라고요 제 사주에 남자 씨도 안 보인다고요"
"엥 말도 안 돼"
근면하게 열심히 살던 A는 점쟁이 말을 신뢰하는 것 같다. 생기 있는 얼굴에는 쓸쓸한 웃음이 묻어 나왔다. 사주가 나빴다. 아직 창창한 젊은 여자에게 그런 고약한 말을 가슴에 새기게 하다니...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며 모은 돈으로 호주 전역을 여행하고 나머지 경비는 대학 학비에 보태는 그녀의 미래를 힘껏 응원하며 점쟁이가 알려준 잘못된 사주는 밥알을 섞어 꼭 꼭 씹어 먹었다.
A가 떠나고 나는 그녀가 가져다주던 중국식 볶음밥을 사들고 집에 왔다. 냉장고에서 김치와 맥주를 꺼냈다. 맥주캔 뚜껑 꼭지를 힘껏 당기자 "딱" 소리가 나더니 거품이 솟아올랐다. 흘러넘치는 거품으로 입을 축였다.
'맛있다'
혼술과 볶음밥은 소박한 나의 저녁이다. 볶음밥을 먹을때면 A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두 컴컴한 빈 방 안에서 종종 이렇게 맥주를 마시는 여유가 있어 좋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 B다. 그녀는 다시 출근하는 술집에 아가씨들의 텃세가 심해 고달 프지만 새로 사귄 프랑스 남자친구가 너무 좋아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한다. 남자의 나이는 8살이 어리지만 세대 차이를 전혀 못 느끼겠다며 수화기 넘어 목소리가 들떠 있다.
워킹비자나 학생비자로 일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부류가 있다. 대부분은 청소, 식당 등의 알바를 하고 나머지 극소수가 술집에서 일을 한다. B는 술집에서 알바를 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즐겼다. 가령 청소하면서 15불을 벌 수 있다면 그곳에서는 150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꺼림칙하지 않다.
좁은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30대 후반의 노처녀가 나은지, 밤낮으로 일하고 돈을 모은 A가 나은지, 술집에서 웃음을 파는 B가 나은지 정해진 잣대가 없는 곳 바로 호주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도박으로 전재산을 탕진한다고 해도
"I don't c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