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면화의 제국
저자: 스벤 베커트
읽은 기간: 약 2달
이렇게 두꺼운 역사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클하대 산업스터디가 아니었다면 혼자서는 읽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2월 5일부터 매주 약 2시간에 걸쳐 책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해 주시는 대표님이 없었다면, 초반에 읽다 조는 날이 많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진도에 맞춰 읽는 것이 버겁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방대한 면산업의 변천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면화를 중심으로 산업의 흐름을 이렇게 잘 정리해 놓은 책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 번밖에 읽지 못했고,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밟히고, 때때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였다. 산업 제국과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 위에 세워졌다. 면화가 기계로 직조가 가능해지고, 수력과 화력 에너지로 발전이 가능해지고, 대량 생산 체제를 이룸으로써 산업 자본주의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람들은 힘없이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렸던 노동자들이었다. 새로운 땅을 개척하던 드높은 모험 정신 뒤에 자본에 대한 과도한 열망으로 얼룩진 노예 노동의 실상은 끔찍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자리에, 폭력, 폭언, 죽음이 난무하던 면화 농장은 그들의 노동으로 최고의 생산력과 효율을 자랑했다.
면화 농장의 노예뿐만 아니라, 산업 현장 초기 공장 환경은 위험한 기계와 먼지로 가득했고, 하루 12시간의 노동 시간을 보장받는 것조차 꿈같은 일이었다. 값싸고 저항이 덜하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이 열악한 환경의 산업 현장으로 내몰렸다. 약자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산업 혁면에서 기계의 발명과 발전만 생각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희망적이었던 점은 산업 자본주의로 인하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아짐에 따라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힘이 정부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졌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더 나은 노동 환경, 더 나은 노동 시간과 임금,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지켜질 수 있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단순한 노예 해방 운동이 아니라, 이 또한 산업 자본주의를 이행하기 위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관점도 새로웠다. 남부는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로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들의 힘이 강했고, 북부는 방적, 방직기 등의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을 운영하는 산업 자본가들의 힘이 강했다. 공장 운영에서 중요한 것은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는데, 북쪽에서 노동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남쪽의 노예를 해방해 그 인력을 흡수하고자 하는 의도가 북쪽 자본가들에게 있었다. 노예 해방이라는 인류의 긍정적 해결책이 등장한 것은 그들을 진심으로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인간의 선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뜻밖에 문제들이 해결될 수도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선함에 호소하는 것보다 또 다른 인간의 이익에 호소하는 것이 빠르겠다.
상인들의 등장과 금융 시장이 생겨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중개인들이 면화를 면직업체들에 넘기고, 다시 옷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시장에 팔렸다. 하지만 면화의 수확량이 확대되고, 저렴한 가격에 면화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리 가격이 형성되는 선물 시장이 나타났고, 물건을 보지 않고 대금을 결제함으로써 신용이 중요해졌다. 면화를 미리 확보하기 위한 대금 결제를 위해, 이를 대출해 주는 은행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선물, 대출, 금융시장은 결국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확보하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미국에서 면화 농장이 노예무역과 노예 노동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다른 나라들도 따라 하려고 했지만 대체로 실패했다. 인도나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에서도 기존의 농부들과 그 커뮤니티를 무너뜨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생계를 위한 작물 농사를 포기하지 않았고, 면화는 그들에게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돈을 더 버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고, 생계를 유지할 작물만 있으면 되었다. 무력으로 치고 들어간 인도 땅에서도 영국인들은 그들의 공고한 커뮤니티와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없었다. 독일은 식민지 토고에서도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면화 농장을 운영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천성을 바꿀 수 없었다.
이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본가들은 정부와 손잡고 토지를 몰수하여 소수의 사람들이 소유하게 하고, 자유롭게 살던 농민들을 소작농이나 임금 노동자로 만들고, 농사가 잘 안 되어 돈을 갚을 수 없게 되면 부채 더미에 앉아 헤어날 수 없는 빚더미에 앉게 만들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끝없이 노동으로 돈을 만들어 갚아가는 것이었다. 토지를 가져가고, 빚을 내게 하고, 결국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그 시스템은 노동자들이 끝없는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공평하고, 공정해 보이는 법이, 과연 공평하고, 공정한지 의문을 갖게 되는 지점이었다.
국가가 힘을 강화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등 무력을 쓰거나 법을 개편하고 강화하는 방법 외에 또 힘을 쏟은 부분이 정보의 강화였다. 국가는 시장 동향 정보를 수집하여 통계 자료를 만들고, 작황 보고서를 공유하고, 국가 분류사들을 통해 공식적 면화 표준을 만들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여 공급함으로써 상인 네트워크의 힘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힘을 강화하였다. 정부 차원에서 정보를 통합하고 표준화를 통해 품질을 관리하는 등의 일들이 국가의 힘을 강화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점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었다.
면화 시장의 규모는 각 가정에서 수공업으로 만들던 시대부터 시작하여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단계를 거쳐, 이제는 폴리에스테르, 나일론과 같은 합성 섬유 시장과 경쟁하는 과정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 왔다. 시작은 미미했다. 각 가정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면화씨를 빼내고 실을 뽑고, 면을 만들고, 그리고 옷으로 탄생시켰다. 이렇게 시작된 면화의 번영과 쇠퇴는 나라와 나라를 거치며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계속 변화하였다. 전쟁자본주의 대표, 노예 노동으로 면화 농장의 성공을 이끌었던 미국, 기계의 발전과 저임금 노동으로 이루어낸 영국에서의 산업자본주의. 이후 기계를 들여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관세 부과로 보호 무역을 실시하여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국가의 힘으로 토지를 빼앗고, 식민지배를 통해 노동력을 동원한 독일, 일본, 러시아 등이 중심이었던 면화제국주의 시대. 그리고 결국 면화는 돌고 돌아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고, 산업화에 눈을 뜬 인도로 돌아온다. 기계는 영국 것을 쓰지만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한 인도, 일본, 중국 등이 면화의 제국을 이끈다.
이 책은 천 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으로 내가 위에서 몇 가지 흥미로웠던 점만 집어 정리한 것보다 훨씬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산업의 변천사를 면화 Cotton에 초점을 두고 서술하였지만, 다른 산업들도 비슷한 변천사를 겪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면화 뿌리를 씹어하며 일했던 미국 목화 농장의 흑인 노예들, 이집트 국왕의 전제 정치로 노예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집트의 농민들, 그 옛날 야간 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방적, 방직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그리고 글로벌 면화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도로와 철도를 깔고, 면화 농장을 개발하던 일본 및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들. 몇몇 장면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편안하고 편리한 삶 뒤에 가려진 사업화 과정의 그림자들을 기억해 둔다. 마치 면화 산업의 역사를 쪽집에 족보처럼 정리해 둔 면화의 제국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