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비 Nov 05. 2020

우리 회사도 난임 휴직이 가능할까?

2019년 6월 20일의 일기

두 번의 유산 이후 나에게 가장 간절했던 건 ‘퇴사’였다.


회사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야근도 거의 없고 업무강도도 세다고 볼 순 없는.. 남들 보기엔 귀한 직장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이 여자에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는 분위기라 그게 참 힘들었다. 나는 아이가 없을 뿐 아니라 잃은 상태였으니까, 그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자녀에 대한 대화를 듣는 것마저 마음이 아팠다. 이 작은 조직에 임산부도 세 명이나 있어 빵빵하게 아이로 충만한 동그란 배와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한없이 작아지는 듯했다.


곧 시험관을 할지도 모르고, 임신이 되어도 습유 처치로 병원에 얼마나 자주 가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는 사실 두 번째였다. 그보다는 만약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면, 그래서 이 많은 아이 엄마들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임신에 대해 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컸다. 내가 점점 더 임신에 조급해지는건 아이 엄마인 게 당연한 이 조직의 분위기에서 나만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불안감도 한 몫하는 것 같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유산에 대한 충격도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선, 퇴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딱, 결심이 서질 않았다. 회사를 포기하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의문이 들었다. 일단 퇴사를 하면 우리 가정의 수입이 반으로 줄텐데, 쥐뿔도 없는 우리 부부는 한 푼이 아쉬운 형편이라 겁이 났다. 한편으론 나도 우리 회사 다른 언니들처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며 축하받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다른 큰 회사들은 난임 휴직을 곧잘 쓰기도 한다던데, 우리 회사는 좀 작은 규모라서 그런지 아직까지 휴직을 사용한 케이스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한 사람의 공백이 남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휴직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의 욕심처럼 보일 것 같았다. 평균 근무년수가 10년 이상인 이 회사에서 잠시나마 휴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어서, 그래서 이사님에게 휴직에 대해 말을 꺼내볼까 말까 수백 번 고민을 했더랬다. 그냥 참고 다닐까 아니면....



이 일대일 면담은 사실 이사님이 아닌 직속상관과 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 차장님이 지금 출산휴가를 가있는 관계로 이번만 이사님과 하게 되었다. 그녀가 우리 회사의 모든 결정권자라 해도 다름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이 기회는 운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 말이라도 해보자, 물어나 보자, 결심이 섰다.


쿨하게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휴직’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부터 완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의 눈물에 이사님도 덩달아 울고... 이사님은 아이를 포기한 상태로 결혼 6년 만에 기적적으로 자연임신이 된 케이스여서 아마 노력해도 아이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 나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셨던 것 같다. 울먹거리며 하반기엔 집중해서 병원을 다니며 시술에 매진하고 싶어서 휴직을 하고 싶은데 가능한지를 여쭤봤다.

미안하지만 우리 회사 여건상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답을 예상했고, 그렇다면 회사에 다니면서 병원을 병행해보고 퇴사를 결정해야겠다, 까지 생각해 두었었다. 그러나 이사님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 너무나 달랐다.

잘 생각했다고, 사실 그것만큼 인생에 중요한 것이 없으니 지금 병원 치료에 매진하는 것에 너무나 찬성한다고.. 그렇지만 이것 때문에 퇴사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업무는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할 것 전혀 없다고.. 휴직하면서 너무 임신에 매달리기보다는 쉰다고 생각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맘을 편히 가지라는 따뜻한 조언까지..


이사님도 어렵게 아이를 가지셨기에 나의 마음을 공감해주실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말씀해주실 줄은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 이사님 말로는 본인도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지사장님과 본사 사람들에게 모두 큰 배려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나도 마찬가지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완전히 지지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외국계 회사라 하기도 민망한 작은 규모지만, 이럴 땐 역시 한국 회사와 좀 다른 걸 느낀다. 제도적인 뒷받침뿐 아니라,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그게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문화 같은 것.


말해보길 정말 잘했다.

회사에 난임 휴직이라는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에 서류상 어떻게 처리가 될지, 기간은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같은 건 아직 전혀 알 수 없지만, 일단 큰 산 하나는 넘은 기분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의 퇴사를 가장 두려워하던(;;) 개미 씨가 나보다 더 기뻐해 줬다. 하하.




Melbourne, 2011




매거진의 이전글 유산도 습관이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