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2일의 일기
휴직 날짜가 구체적으로 잡히고 있다.
기간은 최대가 4개월이고, 회사 내규상 그 이상은 힘들다고 해서 내년 1월 2일 출근을 목표로 4개월에 남은 연차를 거슬러 정확한 휴직 시작 날짜가 정해질 것이다. 이사님이 HR에 문의한 결과, 우리 회사엔 난임과 관련된 규정도 없는 데다 아직까지 난임을 이유로 휴직을 사용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하여 회사 내규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청원 휴직'이라는 것을 적용해서, 기본 2개월에 지사장님의 컨펌 하에 한번 더 연장하여 4개월까지 쓰는 것이 최대라고 한다. 내가 애초에 말씀드렸던 5개월을 지사장님은 문제없이 컨펌하셨지만 사내에 적용 가능한 규정이 없어 4개월에서 초과되는 기간은, 한 달 보다 적은 주 단위조차, 현실적으로 사용이 힘들다고 한다.
처음 휴직에 대해 말이 나온 며칠 뒤, 얼마나 쉬기를 원하는지 먼저 알려달라고 하셨다. 글쎄, 얼마가 적당할까? 얼마면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혼자서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난임 휴직을 검색해 봤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었다. 어떤 회사는 육아 휴직을 당겨 미리 사용하는 것으로 난임 휴가를 대체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모든 새로운 제도가 그러하듯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에서부터 도입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대부분 최대 1년까지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흠, 1년이라...
나도 마음 같아선 그들처럼 1년 정도 쉬고 싶었다. 임신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초기 유산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 고작 몇 달은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워킹맘이 대다수이면서도 육아휴직조차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소규모 조직에선 1년의 난임 휴직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사내의 어떤 직원은 몇 년 전 육아휴직을 몇 달 요청했다가 ‘돌아왔을 때 너의 자리’를 운운하는 상사의 클리셰를 듣고 취소했던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히스토리를 아는 상태에서 육아 휴직도 아닌 난임 휴직을 요청하는 데에는 나로서도 큰 용기가 필요했고, 여기에 거의 남지 않은 용기를 더 쥐어짜낸 게 5개월이었다.
이제는 모질었던 그 상사 또한 엄마가 된 덕분에 휴직 자체에 대해선 운 좋게 승인은 받았지만, 기간은 또 다른 문제였다. 가능 여부를 떠나 얼마를 요청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업무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편견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사는 허가했어도 팀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또 모를 일이었다. 여러모로 조심스럽게 판단한 기간이었으나 결과적으론 내규에 따라 기간이 정해진 셈이 되었다. 다행히 나의 요청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어차피 내규상 4개월이 최대라면 그냥 처음부터 그렇다고 알려줬다면 쓸데없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편했을 텐데.
그래서 4개월—
임신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에겐 무척이나 짧은 기간이다. 최대한으로 시도한다면 네 번 가능하지만, 그중에 이번처럼 유산이라도 하게 되면 두 번째고 뭐고 없이 그대로 끝이 나버릴 기간. 나는 이 기간 안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그렇기에 성공과 실패 여부에 매달리기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갖는 시간이 되었으면 싶다. 사무실 안에서는 아무래도 마음이, 요동치고 흔들리는 마음이 다잡아지지 않았으니까.
휴직하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버킷 리스트를 생각 중이다. 지금 대략 생각한 것들은 이렇다.
1. 그동안 못 본 영화랑 넷플릭스 보기
2. 그동안 못 본 책 읽기 - 동네 도서관 다니기
3. 아침 산책하기
4. 블로그에 미뤄두었던 여행사진 포스팅하기
5. 하나 정도는 뭐든 배워보고 싶다. 예를 들면 영상 편집..?
6. 평일 낮에 조카와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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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별 것 없다.
이 곳 입사 후 9년 만에 처음 갖는 일주일 이상의 휴식인데, 떠오르는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이 꽤 일상적인 것들이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쫓기듯 보내는 주중과 늘 좀 더 알차게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주말의 반복이 아닌 심플한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회사원이라면 평일의 여유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가치인지 잘 알기에.
사실 여행을 1번으로 넣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제 결혼했으니 개미씨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같이 놀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