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곧 백수가 됩니다
심장소리는 딱 반나절치의 안심이었습니다.
이후로 아이가 나오는 순간까지도 마음 한 켠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만의 화살이 나에게 되돌아올까 두려워 임신에 성공했다, 라는 말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좀 더 즐기면서 편안히 지냈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싶네요. 쉼 없이 걱정하는 엄마가 무색하게도 아기는 아무런 이벤트도 없이 제 몫을 다해 자랐거든요. 어떤 검사를 해도 정상, 정상, 정상. 그렇게 조용히 뱃속에서 지내다 예정일 열흘 전, 양수부터 뽀록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습니다.
해서 저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던 시간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사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과는 다르게 꾸준히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천성이 게으른 사람인데다 심약한 구석이 있어서 실패를 거듭하던 때의 감정이 다시금 몰려오는 것도 힘이 들었고, 또 글을 올리는 와중에 회사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게 되어 곧 실직을 앞두게 된 처지가 되었거든요. 과거를 되돌아보기엔 나의 현재와 미래가 너무나 불안해져 버렸습니다. 아기를 볼 때마다 신랑과 나, 두 사람만의 가족이었을 때와는 다른 부담감, 그리고 미안함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더구나 다른 팀원들보다 반년 빨리 회사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아기를 위해 난임휴직 4개월, 육아휴직 2개월을 쉰 탓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망치로 머리를 띵 하고 맞은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것입니다. 휴직을 택하면서 걱정했던 것은 승진누락이나 연봉인상제한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에서는 좀 밀려난다 해도 감수할 수 있다는 각오가 있었습니다. 다만 회사에서 불이익이 있을 때, 휴직을 이유로 내가 타겟이 되지는 않기만을 바랬습니다. 잘나가지 못할까봐가 아니라 떨궈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되어 눈 앞에 닥치니 참 할 말을 잃게 되더군요.
아기를 갖기 위해, 또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몇 달의 시간들 때문에, 회사 입장에선 업무보다 개인의 삶에 몰두하는 이기적인 사원으로 비춰졌던 것입니다. 서울시의 출산율이 0.69라고 하고,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국민은 멸절될 것이라고들 하는 이야기는 회사의 이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요. '휴직'이라는 서류상으로도 완벽하게 객관적인 감점요소가 저를 손쉬운 불이익의 타겟으로 만들어 항변조차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난임휴직이나 육아휴직을 고려하시는 많은 여성 근로자 여러분들은 이 점을 충분히 심사숙고하셔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회사에서 베푸는 배려에는 적든 크든 반드시 대가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난임/육아휴직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 보다는 ‘회사의 배려' 쪽에 속해 있습니다. (아닌 곳도 있겠지요? 제발 있었으면...)
회사원으로서 난임을 겪고 출산까지 하고 보니, 힘들게 회사 업무와 병원 진료를 병행하시는 분들, 큰 결심으로 회사를 포기하신 분들, 모두 얼마나 어렵고 힘든 상황일지 헤아려 보게 됩니다. 아이는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빛을 잃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감히 가져 봅니다.
앞으로는 워킹맘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직맘, 나아가 전업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가 됐든, 계속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