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그리고 심장소리
지난주부터 점점 속이 안 좋아지더니, 6주 4일째 되는 날 기어이 토가 나왔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오렌지색 위액만 쏟았다. 근 며칠,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입덧인가? 싶게 처음엔 긴가민가 하던 게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심지어 마시는 것도 힘들어졌다.
목까지 답답하게 꽉 막혀 체한 것 같은 느낌.
느끼한 것을 먹고 잘못된 것처럼 니글거리는 느낌.
단 것은 너무 달고 짠 것은 너무 짠 것 같은 느낌.
허기가 지고 배가 고픈데도 도무지 아무것도 못 먹을 것 같은 느낌.
내 증상은 이러했다. 과연 삶의 질이 바닥을 쳤다. 시체처럼 몸을 겨우 끌고 다니고 부엌 근처만 가도 힘이 들었다. 늘 달고 살았던 탄산수는 어쩐지 넘어가지 않았고 물은 니글거려 마시지 못했다. 휴직하기를 천만다행이었다. 이 몸으로 회사까지 다녔다면 진짜 지하철 안에서 토를 쏟거나 길가다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으로 입덧이란 걸 하면서 깨달은 건, 드라마에서처럼 예쁘게 욱욱하는 헛구역질이 아니라 진짜 뱃구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참지 못할 구역감이라는 것. 그게 몰려오면 음식물이 넘어오기 전에 가스부터 나와서 트림처럼 꺼억- 하는 더러운 소리가 난다는 것... 욱욱보다는 꾸우에엑에 하는 짐승 소리에 더 가깝다는 것... 임신 전에 각오했던,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이럼에도 아기만 잘 있다면 뭐가 문제겠냐마는 아직 초기이기에 마음을 푹 놓지는 못했다. 이번엔 가서 꼭 심장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어떤 결과가 있어도 받아들이자.
다음날, 대기실에 앉아 계속해서 되뇌었다.
심장소리라니, 내가 그런 걸 들을 수 있을까. 남들처럼 정상으로 크는 아기를 만날 수 있을까. 일주일간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입덧도 이 긴장된 순간 동안엔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도 길게 느껴지지만, 진짜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은 초음파 기계가 몸속에 들어간 후, 선생님의 첫마디를 기다리는 순간이다. 그 첫마디가 나를 천국으로 데려갈지 아니면 지옥으로 떨어뜨릴지 몰라 늘 두렵다. 오늘은 무슨 말을 들으려나.
- 일주일간 아주 잘 자랐네요!
다행히 오늘은 천국행인가 보다!
- 심장소리 아주 잘 들릴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찾아주신 아기는 아주아주 작고 길쭉했는데 가운데 뭔가가 반짝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아 저게 심장이 반짝거린다는 거구나. 나는 까페에서 봤던 선배맘들의 후기를 떠올렸다. 선생님이 초음파 기계의 사운드를 켜자 곧 심장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아기 크기는 0.92cm
심장박동수 140 bpm
아주 정상으로 잘 크고 있다고 하셨다. 놀라워라!
초음파가 좀 더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녀석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 전 기능성 낭종 파열로 터져버린 피가 공처럼 뭉쳐 아기집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 난리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해 자라서 이젠 심장까지 생겼다니. 이 아이는 어느 별에서 와서 이렇게 건강히 잘 자라 주는 걸까. 이제껏 약한 아이만 품던 나에게, 아기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이 건강한 아이는 어디에서 나에게 와준 걸까. 고맙고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선생님께서 이제 심장소리까지 들었으니 보건소에서 산전검사를 받으라 하셨다. 심장소리부터는 초음파 동영상을 공유해준다고 하셔서 난생처음 어플도 받고 초음파 동영상도 받았다. 산전검사에 초음파 동영상까지 받고 나니 이제 진짜 ‘산모’가 된 것 같았다. 산모라고 불릴 ‘자격’이 생긴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입덧에 집안에 틀어박혀 괴로워하던 사이 어느새 가을이 와있었다. 근래 처음으로 입맛이 돌았다. 집 근처 중국집에 혼자 들어가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먹었다. 비록 다 먹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꽤 많이 맛나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