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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의그녀 Jul 08. 2019

누군가의 곁에서 잠들던 밤을 끝내며

기다릴 누군가도, 누군가가 나를 기다릴 일도 없는 하루를 마주할 때 


나는 꼬박 25년을 누군가의 곁에서 잠들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본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고, 대학생 때는 룸메들과 함께 눈을 뜨는 아침이 있었고, 룸메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낮이 있었고, 룸메들과 떠들다 스르르 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저녁이 있었다. 인턴 때는 쉐어하우스 메이트가 준비를 마칠 쯤 나를 깨웠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됬다. 밤에는 하메의 귀가를 기다리거나, 하메가 나의 귀가를 기다리거나 둘 다 집에 있을 때면 사이좋은 굿나잇 인사와 함께 잠들었다. 


내가 룸메이트를 기다리거나, 룸메이트가 나를 기다리거나

나는 그렇게 한평생을 누군가의 다정 곁에서 살아왔다. 대학생때는 같은 사람들과 4년의 하루 시작과 끝을 하께 했다. 매일의 사소한 대화가 쌓여 기억이 되었고 기억들은 계절에 실려 추억이 되었다. 함께 들은 노래를 들으면 그 순간들이 봄비를 맞은 새싹처럼 조그맣게 내 마음에 피어났다. 아르바이트 가는 친구를 내가 배웅하고, 과제하러 가는 나를 친구가 배웅하는 하루가 익숙했다. 불안히도 흔들렸던 대학생활이 즐거움으로 미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봄이면 낮에 벚꽃을 보러 인사대에 가고, 여름이면 밤에 예대부터 인사대까지 쭉 가로질러 몇바퀴를 돌았다, 가을이면 오후에 등나무에 앉아있었고, 겨울이 오면 내년에 살 집을 보러 다녔다. 서로의 하루일과를 묻는 것이 습관이 될 때 쯤 우리는 학교를 졸업했다. 우리가 따로 살아야 할 때가 찾아왔다. 당연한 수순인데도 슬프고 애틋했다. 같이 살던 친구들 모두 홀로서기를 시작하는데 반박자 느리게 사는 나만 혼자 시작하는 하루가 무서워서 집행유예 기간을 가졌다. 쉐어하우스에 들어가 꼭 2인실을 고집했다. 스스로 계도기간을 가졌다. 


남들보다 길었던 계도기간이 끝나고 나는 한달 전부터 혼자 살게 되었다. 집에서 나는 모든 소음이 나로부터 비롯되는 하루는 아직도 어색하다. 현관문을 나서는 이가 오직 나뿐인 집도 낯설다. 밤에 누군가의 재잘거림 없이 잠드는 게 무서워 팟캐스트의 도움을 받아 자고 있다. 누군가가 나의 지각을 걱정하며 깨우는 일도 없다. 그 걱정에 애정 어린 투정을 부리며 기상을 미룰 일도 이제는 없다. 


사실 지금까지는 '그립다'라는 말과 마음을 어물쩡하게 무시하려고 애썼다. 내가 겪을 감정소모가 두려워서, 하지만 더이상 애써 피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하는 사람들을 떼어냈는데 얼마나 사무치게 그립고 외롭겠는가. 학교 다닐 적 가끔은 '분명 그리울 꺼야' 라며 예방주사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상을 해도 그립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였다. 나는 아직까지 돌림노래처럼 지난 4년을 그리워한다. 진즉 도착했어야 할 감정을 때늦게 마주하고 있다. 


이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가 왔다. 혼자에 익숙해지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밀려오는 감정들을 똑바로 마주하고, 내 곁을 더 소중히 대하며 우리 관계의 2막을 열어보려고 한다. 우리가 함께할 눈부신 미래를 기대하며, 과거완료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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